한여름의 깊은 무더위에서 청명한 더위만 골라
한 두레박쯤 퍼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나른한 오후에 동면하는 의식이
진지한 일상을 저만큼 물러나게 하였을 때,
싸늘한 사무실 한켠에 바람소리가 들릴 듯한
청명한 더위를 휘휘 풀고
깊은 오수에 잠기고 싶은 그런 날이다.
어제, 그제 이틀은 금방 눈이라도 올듯
쌀쌀하더니 오늘은 제법 푸근하다.
양지를 피해 그늘로만 숨어들던 시간이
엊그제인 것만 같은데
밖에서는 이제 손바닥 만한 볕이라도
아쉽게 느껴진다.
짐짓 무심한 일상이
과거를 향해 미끄러지듯 순항하는
금요일의 짧은 오후에도
계절에 실려가는 녹음(綠陰)의
순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우연한 석양이 노랗게 변해가는
은행나무 가지 사이로 한 주의
마지막 날을 힘겹게 밀어낼 때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