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에 일어나 평소처럼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잔뜩 흐린 날씨였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비가 오면 조금 맞지,뭐.'하고 가볍게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 우산도 없이 산을 올랐다. 등산로는 어제 내린 비로 여전히 미끄러웠다.
산의 정상 근처에 이르렀을 때부터 바람이 심상찮았다.
키 큰 교목의 우듬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솨,솨'하고 거세지는가 싶더니 그야말로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목덜미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얼마나 크던지 아픈 느낌마저 드는 것이었다. 그 잠깐 사이에 옷은 속옷까지 흠뻑 젖었고 등산화도 이내 축축해졌다. 어찌나 거센 빗줄기던지 물보라가 하얗게 일고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빗방울이 잦아지면 내려갈 요량으로 운동기구 밑에서 잠시 동안 비를 피하였다.
하늘을 보니 쉽게 가라앉을 기미가 아니었다. 어차피 젖은 몸. 다시 빗길로 들어서 하산을 서둘렀다. 잠깐 휘몰아친 비에 등산로는 금세 누런 흙탕물로 변했다. 비에 젖은 옷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간신히 산을 다 내려왔을 때에야 빗방울이 가늘어졌다.
오전 내내 재채기를 하다 점심을 먹고나서야 좋아졌다.
지금도 여전히 비가 내린다. 인간은 자연 앞에 아주 작은 존재임을 까맣게 잊고 살았나 보다. 인간의 오만함은 이 엄정한 자연의 섭리를 순간순간 잊게 한다. 일각이 여삼추 같다가도, 지나고 보면 몇 시간이고 몇 날이고 건너뛴 것처럼 까맣게 잊혀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