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선지 같은 마음에 8할의 어둠이 내려 앉는다.
시간의 질료가 가장 부드러워지는 시간.
이따금 해야 할 일이 남은 듯한 강박이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며 도드라진다.
어둠이 깊을수록 제 마음에 드리워진 상념이
제멋대로 뿔뿔이 흩어지곤 한다.
달음박질치던 상념이 과거의 한 순간에
붙박인듯 자리를 잡고 움지이지 않는다.
내 안에 침잠된 시간이 선물하는 고요.
살다보면 그 고요의 푸른 칼날에
가슴이 베일 때가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과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강해>를 번갈아 가며 읽었다.
가끔, 각자가 따로인 책들이
상념의 도움을 받아 한몸처럼 잘 어울리는 경우가 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빈 공간을 뚫고
멧비둘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저들처럼 한곳에 머물지 않으면
잊었던 자유가 품안 가득 몰려 오는 것일까?
차츰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쪽으로
한뼘쯤 기울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