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학교에서 오늘부로 1학기 기말고사가 모두 끝난다.
이제부터 여름방학 전까지 학생들은
실질적인 방학 전 모드로 진입하는 것이다.
시험기간 내내 만나지 못했던
이성친구와의 만남도 기다려질 테고
부족한 잠도 보충할 테고
영화나 연극을 보며 억눌렸던 긴장을
해소하는 학생도 있을 터이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방학에도
보충수업이다, 자습이다 하면서
학교에 등교하는 날이 더 많은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방학을 기다리는 눈치다.
아이들과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지나고 나니 아쉬운 점이 더 많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내 말이라면 군소리 없이 따르는
학생이 있다. 그래서일까
나도 그 학생에게 만큼은
아무리 바쁜 날에도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비 내리는 오늘, 나 자신을
가만가만 되돌아 보았다.
얼핏 들었던 생각은, 내가 그 학생에게
무척이나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나브로 나는 그 학생을 아낀다는
명목하에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그 학생은 나의 말에 단 한 번도 토를 달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추종.
사람의 관계에서 그것처럼 깨어지기 쉬운 관계도 없다.
강압적으로든, 스스로 원해서든 누군가의 말에
일방적으로 따르고 추종하는 관계.
우월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관계에 중독되기 마련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 관계가 깨어졌을 때
멘토의 위치에 있던 사람은 '내가 너한테 쏟은 정성이 얼만데'
하는 심정으로 섭섭해 할 테고,
멘티의 입장에 있던 사람은 자신의 작은 실수조차
멘토의 탓으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판단과 의지 대로 한 행위도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조언에 의지했던 사람은 오죽할까.
요즘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이런 관계가 지속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한두 명의 아이를 키우는 요즘의 부모들은
시간적 여유가 많은 탓이기도 하려니와
나 아닌 타인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재미를 붙이고 서서히 중독되어 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고
실수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어른들의 인내가 없으면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에만 비로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가 조성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