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를 무사히 넘겼다.
내게 2011년의 9월은 참으로 힘겨운 한 달이었고 또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나는 열정이 식은 연애처럼 심드렁한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텼고, 아이들도 저마다 시험준비로 바빴었다. 의욕만 앞섰던 지난 1년이 길고 길었던 지난 여름의 장마처럼 계절의 뒤편으로 사라져 간다. 한동안 고민만 거듭하다 이제야 굳어진 결정을 아쉬움과 미안함이 쓸어가기 전에 나는 서둘러야만 했다. 나는 언제쯤이면 만남과 헤어짐에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담담할 수 있을까?
퇴근 후, 나의 숙소에는 늘 그렇듯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의 수다가 끝없이 이어지고 나는 아이들의 왁자한 소란 속으로 내 말을 들여놓지 못했다.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넋 나간 사람처럼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자신들의 소란을 제지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궁금증이 일었는지 오래지 않아 수다는 제 풀에 스러졌다. 누구라도 먼저 말을 꺼내기 어려웠던 어색한 침묵이 한동안 이어졌다. 나의 결심을 말해야 하는데 목구멍에 걸려 넘어오지 않았다.
구구한 변명만 이어졌다.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것과, 수업준비로 회사일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과, 피곤에 지쳐 주말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는 것과 이런 저런 변명들이 미리 준비한 것도 아닌데 끝없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꼭 해야 하는 말에 이르러서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치가 빤한 아이들이 이제 그만 둘 것이냐며 따지듯 물었다.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쉬고 싶다며 변명처럼 에둘러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서둘러 자신의 가방을 챙겼다. 살면서 한번쯤의 배신을 경험한 아이들은 어른보다 체념이 빠르다. 그들은 울지 않았다. 굳은 얼굴로 숙소를 빠져나가는 사내 녀석들과는 달리 여학생 몇은 뒤에 남아 눈시울을 붉혔다. 척박한 땅에서도 사람은 자랄테지만 대지의 강한 생명력이 그들을 지켜주기를... 나는 중학생 녀석들을 그렇게 보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고등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자 숙소는 금세 소란해졌다.
어제와 다른 분위기를 감지한 탓인지 아이들은 내 표정부터 살폈다. 나는 그들에게 변명을 하지 않았다. 조금 힘들어서 잠시 쉬었으면 한다는 한마디 말을 꺼냈을 뿐이다. 이어지는 침묵.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많은 고등부는 처음부터 자신들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었다. 혹여라도 내가 밥을 굶을세라 김치며 밑반찬들을 바리바리 퍼 날랐었다. 간혹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을 뿐 아이들은 시선을 내리깔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여학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나는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며 다독였다. 숙소를 빠져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노라니 허우룩해지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오늘부터 휴가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자정까지 꼬박 긴장된 시간을 보냈었는데 나는 오늘부로 그런 긴장감에서 해방되었다. 그럼에도 퇴근 후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어제의 일을 까맣게 잊은 학생 몇몇이 숙소의 문앞에서 나를 기다려주지나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구름 낀 하늘에는 희끄무레한 달빛이 비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단절된 일상이 그리워지면 내 휴대폰에 저장된 그들의 단축 번호를 나는 습관처럼 누르게 될지도 모른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