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가르치는 모든 학생들의 기말고사가 비로소 끝이 난다.
참으로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이삼 일 간격으로 반복되는 장맛비를 뚫고 아이들은 시험 기간 내내 비좁은 내 숙소에 옹기종기 모여 향학열을 불태웠었다. 다행히 회사에서는 나를 기다릴 아이들을 생각해서 퇴근 시간이 되기도 전에 동료들은 내 등을 떠밀다시피 하며 이른 퇴근을 종용했었다. 그들의 배려가 눈물나게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부담감도 컸다. 나는 지난 주말을 반납하고 시험을 치르지 않은 아이들의 시험 공부를 도왔다. 나의 노력으로 동료들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응하고 싶었다.
이미 시험이 끝난 아이들은 시험 결과를 들고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환한 미소로 마음 가득 선물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야말로 보조자의 입장이었는데도 말이다. 아이들로부터 이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나는 그들이 이룬 땀의 결실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느낌이 들곤 한다. 아이들의 성적 향상은 오직 본인들의 노력에 의한 결과일 뿐이니 모든 칭찬이나 영광은 그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힘겨운 발걸음에 약간의 힘을 실어주었다 하여 그 공을 모두 나의 몫으로 돌린다면 너무나 부당한 일이 아닌가. 축하한다는 나의 말에 몸을 배배 꼬며 몹시 부끄러워 하는 아이들의 몸짓. 나는 아이들의 땀의 결실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었다.
회사 차원에서 00이의 장학금 지급에 대한 나의 기안서는 몇 번의 토의 끝에 조건부 승낙이 있었다. 그 조건을 받아들일 것인지는 오직 나에게 달렸다. 그것도 대학에 진학해서부터가 아닌 서류만 구비되면 다음달부터라도 당장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호조건임에도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직원의 자녀도 아닌 00이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소요되는 제반 비용을 지급하는 대신에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방과후 학습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가르치는 일마저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전체에 회사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회사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도 지금처럼 오직 아이들 편에 서서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선과 악의 구별이 무 자르 듯 그 경계를 명확히 구획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내 자신의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에 있어 또는 개인의 문제와 공동의 문제가 충돌할 때면 선택은 더욱 복잡해지는 것 같다, 나는 00이에게 상의를 해야 함에도 혹시 시험에 영향을 미칠까 싶어 지금까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00이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이번 일을 정작 본인에게는 한마디 귀띔도 없이 나 혼자 일을 벌렸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러서야 이것이 00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내가 가르치는 모든 학생들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00이를 돕자고 시작한 일인데 지금은 큰 죄를 지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