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말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 우리를 닮은 그녀의 이야기
김성원 지음, 김효정 사진 / 인디고(글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지금은 사라진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그때처럼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렵게 난 자리에 떠다밀다시피 하여 그녀를 앉히고 내내 서있는 나에게 미안해진 그녀가 의자의 팔걸이에라도 앉으라며 어깨를 움츠리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엉덩이만 살짝 걸친 채,  팔걸이에 불안한 자세로 앉아 있던 그때의 나처럼 기차의 아늑한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싶을 때가 있다.   
살짝살짝 스치던 그녀의 옅은 블라우스 그 까칠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고 싶을 때가 있다.
은은히 풍기던 그녀의 비누 향기에 취해, 슬픔이 담기지 않은 그녀의 환한 미소를 다시 한번 음미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닿을 수 없는 인연에 다시 한번 다가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사랑은 어렵다.
기름종이에 쓰여진 모종의 암호문처럼 나의 사랑법과 너의 사랑법은 해독 불가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자신처럼 헤어진 실연의 아픔을 읽는다.
마치 사랑에 사랑을 덧칠하면 언젠가 한마리의 닭이 한마리의 공작으로 변신하여 행복한 미래를 향한 레드 카펫을 밟을 것처럼...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인지 모른다.
좋았던 시절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지나간 사랑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은
쓰라린 기억이 다 사라질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인것처럼."
<언젠가, 그리워질 이 순간>중에서 

KBS 2FM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의 담당 작가로 일하고 있다는 작가.
우리 인간은 같은 기차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방랑자라는 믿음에서, 내가 좋은 생각을 품으면 그것이 우주에 퍼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글을 쓴다는 작가.
우리의 운명도 비 오는 날 우산으로 가릴 수 있다면,  마른 땅을 골라 디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오늘이 슬펐던 이에게 내일의 문이 열리면 그리운 이가 기다렸다는 듯 꽃무늬 우산을 펼쳐들지는 않을까?  그녀의 일상은 사선으로 긋는 감정의 미끄럼틀에서 빗줄기처럼 흘러내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진짜로 잊는 걸까.
수영을 배운 사람은 물에 빠지면 본능적으로 헤엄을 친다.
몸이 수영 동작을 기억하는 것처럼, 머리는 잊어버리는 일도.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은 계속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닐까.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숨는 것이다." <스펀지에 물담기> 중에서   

이런 글을 읽노라면 저녁 나절 손이 데이는 줄도 모른 채 하염없이 무쇠솥 뚜껑만 문지르던 누이의 슬픈 얼굴이 떠오른다.
사랑의 아픔은 그때의 화상 자국처럼 영영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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