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새벽 어둠을 뚫고 산을 올랐다.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산길은, 더군다나 오늘과 같이 아무도 밟지 않은 새벽길은 가슴 두근거리는 설레임을 안겨준다.
우산을 받쳐들고 조용히 걷고 있노라니 온 세상 만물이 잠에 취한 듯 사위가 고즈넉하고 적막하다.  이런 날이면 호들갑스런 청설모도, 부지런한 딱다구리도, 먹이를 찾아 풀숲을 뒤지는 참새도 보이지 않는다.
산의 정상에 다다랐을 무렵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비오는 날, 호흠은 늘 ’여기’ 에 머문다.
일정한 시차를 두고 ’똑똑’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그동심원의 파장 중심에 몸과 마음이 오롯이 합일을 이룬다.
맑은 날이면 날숨을 따라 저만치 앞서가던 마음이 떨어지는 빗방울에 놀라 되돌아오고, 몸과 마음과 시간이 삼위일체가 되어 지금 이 시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음의 창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길지 않은 시간.

’마음이 생각의 넝쿨을 옮겨 다닐 때의 또 다른 문제점은 결코 현재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던 어느 여류작가의 설명처럼, 맑게 개인 날이면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과거를 들이파거나, 미래를 들쑤시기에 바빠 이 순간에 편히 쉬지 못한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소나무에서 짙은 솔내음이 기분좋게 코끝을 자극한다.
오늘은 서둘러 출근할 일도 없으니 평소보다 멀리 걷기로 한다.

어느새 하얗게 눈 덮인 풍광이 그저 평화롭다.
사는 것이 지금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고, 눈처럼 아름답다면...
나무 등걸에 앉아 눈 내리는 아침산을 넋놓고 바라보았다.
어느덧 허기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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