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지난 주에는 네가 아데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온 가족을 가슴 철렁하게 만들었지.
너는 두 번이나 토하고, 결국 학교도 하루를 결석하며 이틀이나 앓았더구나.
아픈 너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곁에서 지켜주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엄마에 비하면 나는 마음으로만 걱정했을 뿐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었단다.
전화를 하면 한달음에 달려와 반가운 목소리를 전해주던 네가 아파서 누워있다는 말을 엄마로부터 들었을 때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아들아

어제 아침에는 너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고 아파트 공터에서 축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깔깔거리며 웃는 너의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단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구나.  내가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는 그저 그들만의 작은 기념일이었는데 요즘은 연말과 더불어 한껏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더구나.
오후에 너와 함께 강남역 근처의 서점을 방문했을 때, 거리는 온통 성탄절 상징물들로 가득하여 너는 수시로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지.
네게 슈톨렌이나 파네토네를 사주고 싶었지만 너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더구나.

아들아

추억이란 언제나 사소한 것임을 네가 알았으면 좋겠구나.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여행지에서 네가 했던 말과 너의 표정, 너의 작은 몸짓이 기억에 남을 뿐이란다.
어쩌면 어떤 장소, 어떤 시간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추억이지만 유독 작고 사소한 것만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인지 그 까닭을 나도 모르겠구나.
아마도 미래와 연결된 그리움의 통로는 아주 작아서 커다란 것은 현재에 머물고 미래에는 아주 작은 것들만 모이는 것은 아닐까?

아들아

나도 네 엄마와 통화할 적에 자주 지적을 받는 것이 있단다.
통화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지.  몇 차례 지적을 받은 듯한데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구나.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늘 나중에 기억되지도 않을 신기루에만 관심을 쏟고 있단다.  아마도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겠지.

아들아

바로 지금 어떤 것이 미래로 연결된 그리움의 통로를 통과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에는 작고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고르렴.
지금 비록 커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오래지 않아 기억에서 사라진다면 그것은 결코 소중한 것이 아니란다.  누군가의 말을 진심을 다해 들어주는 것, 순간순간의 작은 표정들, 그리고 마음으로 전해 오는 따뜻함은 네가 어른이 되어서도 언제든 기억되고, 소중한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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