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태풍 곤파스가 어디쯤 지나고 있는지 여전히 바람이 거셌다.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
등산로 초입부터 지난 밤의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진 잔가지와 밤송이들이 가득했다.
등산객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들리는 것은 오직 바람소리뿐. 
원시림을 걷고 있는 듯한 으스스한 기분. 
일순 나를 관통하는 경외감에 몸이 오그라든다.
자연의 힘은 얼마나 대단한 것이며, 그 앞에 인간은 그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썩은 고목이 이번 바람에 쓰러져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멀리서 산을 내려오는 초로의 등산객이 보였다.
공사장에서나 볼 수 있는 안전모와 노란 우의를 입고 조심스레 걷는 모습이 몹시 불안해 보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렀다.
바람은 점점 그 강도를 더하고 있었다.
방금 지나온 길 위로 '툭'하고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물러진 땅위로 밤송이나 잔가지가 떨어졌으리라.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얼핏얼핏 고개를 들어 아름드리 나무의 우듬지 위로 쉬이익 쉬이익 소리를 내며 거세게 부는 바람을 쳐다보았다.
바람에 맞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무들.
나는 그들 틈에서 얼마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가.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야심은 또 얼마나 오만한가.
후두둑 후두둑 비가 듣는 산 중턱의 나무의자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옷이 다 젖는 것도 잊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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