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지난주에는 네 생일이 있었는데 나는 아프다는 핑계로 가지도 못하였구나.

문구점에서 생일카드를 고르며 한참을 서성였단다.

현실이라는 구실로 주중에 너와 떨어져 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너와 같이 사는 것이 옳은 일인지.....

분명한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것과 마주할 용기가 없구나.

어쩌면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이 현실이라는 높은 벽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벽에 기대어 자신의 비겁함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겠구나 생각했단다.

너와의 추억을 한줌의 돈으로 맞바꾸고 있다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구나.

나의 미안함과 외로움, 너에 대한 그리움을 카드의 작은 지면에 다 적지 못하고 우체국을 나섰단다.

다음 일정이 그 모든 감정을 잊게 해주리라 기대하며 서두르는 내 모습이 초라하고 비참했다는 것을 너는 알 수 있을까?

 

 

아들아

 

아침마다 너의 엄마는 유치원 셔틀버스의 시간에 맞추기 위해 때로는 얼르고, 때로는 화를 내면서 너의 느긋한 행동에 조바심을 내곤 하지.

너에게도, 너의 엄마에게도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 아침이겠구나.

너는 한껏 여유를 부리며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고 결국은 엄마와 함께 유치원까지 걸어가곤 하더구나.

바쁘다는 것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란다.

나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자신이 있으면 결코 서두르지 않는단다.

너는 아직 어린 까닭에 너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미리 알 수 없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것이지. 

그래서 너는 맘껏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이란다.

 

 

아들아

 

먼 훗날 너무 바빠 눈코 뜰 새가 없다고 느낄 땐 되짚어 보렴.

너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하고 그 결과에 대해 너는 당당히 책임질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면 서두를 이유가 없는 것이란다.

바쁘다는 것은 결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그것을 잊으려 각각의 시간에 자신의 행동을 분산시키는 것임을 기억하렴.

그 속에는 잘못된 결과에 대한 핑계도 섞여있다는 것을.

나는 네가 항상 당당하고 여유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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