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도 지났지만 더위는 여전합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귀뚜라미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매미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을 뿐입니다. 계절의 변화는 이렇듯 더디게 다가오는 듯하지만 이것이 임계점이야, 하는 경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고, 아침 바람에 소슬한 한기를 느끼게 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걸 알기에 작금의 더위를 아주 세세히 느껴보곤 합니다. 잊지 않으려는 듯 말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지요. 계절도, 우리의 젊음도, 사랑하고 미워하는 시간들도.


단단하던 몸도 나이가 들면서 차츰 흐물흐물 풀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 또한 신체의 변화와 함께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확실히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반문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주변에는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이 덩달아 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노인의 기억력 감퇴나 인지 기능 저하가 아닙니다. 한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 정의나 도덕성, 심지어 종교적 신념까지도 나이가 듦에 따라 너무나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생을 민주화 운동과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일관했던 김지하 시인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기고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신념마저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처럼 개개인이 수립한 정의나 가치관은 미약하기 짝이 없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거나 자신의 정신을 올곧게 지탱하던 체력이 소진되면 너무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에 보였던 진보진영의 백 모 교수가 그렇고,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올랐던 황 모 작가가 그렇습니다. 하물며 장삼이사와 다름없는 노 모 변호사나 신 모 변호사, 이 모 기자나 이 모 작가 등이야 달리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요.


어제는 유시민 작가가 출연한 유튜브 방송을 보았습니다. 나이에 비해 비교적 튼튼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덕분인지 유시민 작가는 아직 자신의 가치관을 잘 유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의 기억력이나 논리는 빈틈이 없었고, 분석 능력 또한 탁월했습니다. 정치평론가를 자처하는 우리나라의 잔잔바리 유튜버들은 유시민 작가의 논리를 부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오직 인신공격과 조롱을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구린내가 진동할 뿐입니다. 나는 지금 미국작가 월리 램이 쓴 <강물이 멈춘 날(The River Is Waiting)>을 읽고 있습니다.


"오른쪽 뒷바퀴에 무언가 살짝 걸리는 느낌이 전해지자, 내가 쌓아 둔 장작더미에서 나무 한 토막이 굴러떨어졌나보다 생각한다. 장애물이라면 그거일 거라고, 그런데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지? 나는 차를 몇 미터 앞으로 뺐다가 다시 후진하면서 장애물을 넘어갈 만큼 가볍게 가속 페달을 밟는다. 그때 백미러로 팔을 휘저으며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도대체 왜 저래? 저 여자가 왜 저렇게 비명을 지르는 거야? 그러다 나는 알아차린다."  (p.26)


우리가 알아차리는 비극은 일이 엉망으로 변한 결과일 뿐이지 진행 중에 있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맞는 대부분의 비극은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현상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오만한 권력자로 변한 대통령의 모습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열역학 제2법칙처럼 가역적인 변화가 아닌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과정은 모두 가역과정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