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연휴가 끝난 엊그제 오후의 께느른한 시간에는 국민 전체의 눈과 귀가 지귀연 재판부로 쏠렸었습니다. 명절이나 여행은 기다리는 시간이 설레고 두근거릴 뿐 막상 닥치면 피곤함과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인해 어서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명절 후에 맞는 출근 첫날은 저마다의 사정을 터놓고 말하지 않아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피곤의 그늘과 느린 발걸음만으로도 힘듦의 강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습니다. 가뜩이나 힘든 하루를 꾸역꾸역 버티고 있던 사람들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피고인에 대한 1심 선고 생중계는 더없이 좋은 핑곗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재판정은 낯선 공간일 뿐만 아니라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가보고 싶지 않은 기피의 공간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끊이지 않는 선전 선동으로 다수의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윤석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보는 것은 일반 형사재판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지귀연 재판부가 내린 형량에 비해 그가 읊었던 판결문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판결문 곳곳이 논리에 맞지 않았던 것은 물론 그가 썼던 비유나 역사적 사실의 언급에 있어서도 상황에 맞지 않거나 일반인도 그 오류를 쉽게 지적할 수 있는 문장들이 여럿 등장했습니다.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된 재판의 재판장으로서 그처럼 형편없는 판결문을 낭독한다는 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워 낯을 들 수 없게 만든 장면이었습니다. 재판을 지휘하고 판결문을 쓰는 일을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닐 텐데 어쩌면 그렇게 부실한 판결문을 대중 앞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어쩌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이거나 사법적 정의는 지나가는 개에게나 줘버린 못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나 아렌트의 인터뷰집 <한나 아렌트의 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합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집필한 의도 중 하나는 악惡이 위대하다는 통설을, 악마 같은 세력이 위대하다는 통설을 깨뜨리고, 사람들이 리처드 3세 같은 엄청난 악인들에게 품고 있는 존경심을 걷어내는 것이었어요."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대체로 '악마 같은 세력이 위대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과 그의 추종자들에 대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여전히 '윤어게인'을 외치며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걸 보면 한나 아렌트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비상계엄이 성공하고 그들의 계획이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내란의 우두머리인 윤석열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고는 하지만 '악惡이 위대하다는 통설'은 여전히 유효한 듯 보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법부의 일부 재판관들도 '악마 같은 세력이 위대하다는 통설'을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명절 연휴 뒤에 맞는 첫 번째 주말, 계절은 이제 겨울을 벗어나 봄으로 향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악惡이 위대하다'고 믿는 내란의 잔존 세력에 의해 정치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비상계엄을 저지했던 대한민국 국민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면 '윤어게인을' 외치던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선善이 위대하다는 통설'을 믿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정치적 겨울의 한파가 그때 이후에는 조금 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