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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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아마도 그녀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솔직함'에 대해 놀라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솔직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끝없이 교육받으며 자라왔지만 솔직함으로 인해 받게 된 여러 불합리한 피해들을 경험하면서 솔직함보다는 오히려 숨김이나 외면, 과장이나 허풍, 윤색이나 덧붙임 등에 더욱 익숙해져 온 느낌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이 된 지금, '솔직함'은 다만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 등장하는 형식적 단어일 뿐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소멸된 언어쯤으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어른이 하는 말은 대개 촘촘한 여과장치를 통해 걸러진, 자신에게 조금의 피해도 가해지지 않을 듯한 말만 남게 되거나 거짓에 가까운 허풍이나 과장이 주를 이룬다. 이렇듯 어른들의 외면을 받는 '솔직함'이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살아난다.


"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했다. 나는 죽고, 더이상 심판할 사람이 없기라도 할 것처럼 글쓰기. 진실이란 죽음과 연관되어서만 생겨난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p.9)


아니 에르노의 소설 대부분이 그렇듯이, 소설 속 주인공인 '나'와 '작가'인 아니 에르노 사이의 간극은 무척이나 좁다. 워낙에 좁은 간극 탓에 소설을 읽는 독자는 '나'와 '작가'를 동일시하거나 그렇다고 믿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작가가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와 같은 결과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작가의 체험을 일부 차용하여 소설화하는, 이른바 '자전적 소설'이나 '성장소설'과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같은 높이에서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이것이 전적으로 작가 자신의 체험이라고 밖에 달리 말하기 어려운 적나라하고, 원색적인 표현이나 묘사가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도 '그것은 단지 소설 속 주인공의 경험이자 나(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결과'일 뿐 나의 직접적인 체험의 결과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슬몃 발을 뺄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그런 순간이면 태초의 야만성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만약 사회가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충동에 재갈을 물리지 않았다면 내가 저지를 수도 있었을 행위들, 예를 들면 단순히 인터넷에서 그 여자의 이름을 찾아보는 대신 "갈보 같은 년! 더러운 년! 잡년!"이라고 울부짖으며 그녀를 마구 쏘아대는 등의 행위들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게다가 권총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종종 그런 짓을 저질렀지 않은가. 결국 내가 겪는 고통, 그것은 그 여자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p.31)


60여 쪽의 짧은 소설인 <집착>은 '육 년간의 관계를 끝내고 몇 달 전 W를 떠난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말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렇게 헤어진 후 그가 자신의 아파트를 나와 다른 여자의 아파트로 들어가 살게 되면서 새롭게 생긴 규칙들, 이를테면 전화는 그의 휴대전화로만 해야 하고, 만나는 것도 저녁이나 주말은 절대 안 된다는 것과 같은 전에는 없던 새로운 규칙들이 생겨나면서 시작된 질투의 감정. '나'는 결코 사그라들 것 같지 않은 이 감정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이 어디로 이끌려가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내 머리와 가슴과 자궁은 온통 그 여자로 채워졌고, 그녀는 가는 곳마다 나를 따라오며 내 감정을 좌우했다.'고 고백하는 '나'.


"나 자신을 먹잇감이자 관객으로 삼았던 질투에 휘둘리며 상상이 빚어낸 형상들을 끌어내고, 어떻게 제어해볼 새도 없이 머릿속에서 그 수를 불려가던 상투적 표현의 목록을 조사해보고, 저절로 떠오르고 탐욕스럽고 고통스러우며 기어이 진실과, 그리고 행복 -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니까 - 의 획득을 노리는 그 모든 내면의 말들을 기술하는 일을 마쳤다. 나는, 6개월 동안 쉼없이 화장하고 강의하고 말하고 쾌락을 누린 여자의 비어 있던 이미지와 이름을 마침내 글로 채우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그런 여자가 다른 곳에서, 또다른 여자의 머릿속과 살갗에서 역시 살아있으리라는 짐작조차 못해보고."  (p.69)


감기 몸살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체험을 일주일쯤 하고 나니 책을 읽는 것도, 컴퓨터 화면에서 문장을 이어가는 일도 마치 처음 하는 일처럼 어색하고, 울퉁불퉁 매끄럽지가 않다. 질투 역시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다른 이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 매일매일의 일상이 마치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그것인 양 정상체온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고열 속에서 행해지는 듯한 착각, 마침내 길고 긴 터널을 벗어나 일상으로 되돌아왔을 때 시큼털털한 후회와 함께 터널 속의 일이 마치 꿈결처럼 아득한 의문부호로 남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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