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웠던 동장군의 기세도 한풀 꺾인 오후, 오늘은 입춘입니다. 오늘 아침 기온도 며칠 전의 기온과는 확연히 달라졌던 까닭에 무거운 코트를 벗어던지고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봄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듯했습니다. 산의 계단을 지나 능선 부근의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데 등 쪽으로 은근히 땀이 차올랐습니다. 매일 아침 산스장에서 마주치는 멋쟁이 할아버지를 만나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지난가을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시던 할머니 한 분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하고 멋쟁이 할아버지가 먼저 알은체를 하며 인사를 건네자 할머니는 "아, 네. 안녕하세요." 하고 답례를 하셨습니다. 그동안 왜 안 보이시나 걱정을 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할머니는 그동안 너무 추워서 나오지 않고 집에서만 지냈다며 근황을 전해주셨습니다. "에이, 꽁꽁 싸매고 다니면 안 추워요." 하며 할아버지는 두운 외투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툭툭 두들겨 보이셨습니다. "이제 날씨도 풀렸으니 매일 나와야지요." 하는 말을 남기고 할머니는 산을 내려가셨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수풀 속 그늘에는 지금도 녹지 않은 잔설이 희끗희끗 겨울의 잔상을 흩뿌리고 있었지만 어렵게 겨울을 난 사람들은 다시 봄을 준비하고 있는 듯합니다.
최근에 읽었던 한 권의 책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이 쓴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책의 줄거리를 되짚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관찰 대상인 '어느 서민 여성'은 사실 저자인 에리봉의 어머니로서 평생 불행한 삶을 사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 때 버려졌던 에리봉의 어머니는 고아원에서 성장하다가 열네 살에 학업을 그만둔 후 '무슨 일이든 하는 하녀'가 되었다가 가정부로, 이어서는 공장노동자로 일을 했고 죽을 때까지 공공임대주택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1950년에 아버지와 결혼해 55년을 해로했지만 "두 분이 서로 사랑하거나 존중하는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다"고 에리봉은 회상합니다. 요양원에 입소한 어머니가 예전에 알았던 또래 여성과 마주쳐서는 각자의 남편을 향한 '원한과 증오'를 주제로 지치지도 않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으로 보며, 저자는 마리즈 콩데의 자전 에세이 '민낯의 삶의 한 대목을 떠올립니다. "왜 남자들은 여자들의 삶을 이렇게 망쳐놓을까?"
"어머니가 내게 창밖의 가수, 과자를 든 아이, 옷장 위의 남자, 소파 위의 개들에 관해 말했을 때, 난 거의 같은 생각을 했다. 그녀도 '다 끝났다'고. 그럼에도 나는 신체적, 정신적 노쇠의 과정이 어떤 리듬으로 일어날지 자문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렸던 아버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으며, 일상생활의 모든 물건(안경...)을 잃어버렸다. 어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아주 명석했으며, 기억을 잃지도 않았고, 그녀를 보러 가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우리는 정상적으로 수다를 떨 수 있었고, 그녀의 이야기는 대개 조리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환각을 느꼈다." (p.105)
우리는 대개 자신의 삶이 영원한 듯 생각하거나 끝에 대해 일절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일상에서의 행복을 반감시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삽니다. 그렇게 회피로 일관하던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실재하는 어떤 것으로 확인되는 바람에 우리는 몹시도 당황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낮에 점심을 같이 했던 지인 한 분이 이르기를 요양원에 계시던 자신의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 갔고, 위독하다는 의사의 말에 가족 전체가 모였었고, 계속해서 혈압이 떨어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죽음이 멀지 않은 듯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생명이 사그라드는 게 슬픈 까닭은 그와 함께 다가오는 봄을 맞을 수 없는 까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을 알린다는 오늘은 입춘. 봄을 닮은 우울이 흐린 하늘에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