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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쓰기 위하여 - 글쓰기의 12가지 비법
천쉐 지음, 조은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9월
평점 :
글을 잘 쓴다는 건 타인과의 교감이나 소통이 원활하다는 의미일 테다. 물론 여타의 다른 재능도 필요할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유명한 작가나 배우 중에는 의외로 낯을 심하게 가리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작가가 살아가는 실제 생활과 그가 작품 속에서 펼치는 가상의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괴리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아마도 현실 공간과 가상공간 중 어느 곳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가상의 공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현실 공간에서의 나는 아마도 갓 전입한 이등병마냥 어리바리한 모습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익숙한 곳과 익숙하지 않은 곳의 차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내 생각은 그렇다.
<오직 쓰기 위하여>를 쓴 천쉐 작가 역시 자신이 현실에서 사교성이 없다고 말한다. 1970년생인 작가가 연륜이 짧거나 경험이 부족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 터, 작가는 오직 글을 쓰는 일에 몰두하였거나 삶의 비중을 글쓰기에 두고 살아왔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중문학과 대학생이 된 스무 살에 소설을 쓰기로 작정했다는 작가는 '가장 존경한 친구'로부터, 대학 문예 동아리 선생님으로부터 '창작의 소질 내지 소양이 없다'는 말을 들었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까 궁리했고, 경제적 어려움과 현실의 고난 속에서도 글쓰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시간을 훔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습관이 들고 나니까 쓰지 않으면 불편해졌다. 나중에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저녁 시장에서 노점을 벌일 때도 노트를 들고 한쪽에서 쓸 수 있게 됐다. '습관'은 어떤 선언으로 변했다.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겉보기에는 야시장 행상인이지만 글쓰기는 내 마음속에 심어져 있고 내 생활에서 표현되고 있다. 때가 되면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 돈을 충분히 모으지 못한다 해도 소설을 쓰겠다는 뜻을 나는 행동으로 여자친구에게 증명해 보였다." (p.38)
출간은 '10년 뒤에나 생각하자'면서도 1년에 한두 편씩을 계속 썼던 작가는 친구가 자신의 작품을 신인상에 응모하는 바람에 출간의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 '악녀서'가 대만은 물론 홍콩에서까지 판매되는 중에도 작가는 타이중 야시장에서 옷을 팔았다. 혹여라도 독자가 알아보는 날이면 아니라면서 외면하곤 했다. 재능은 없고, 대학 졸업 뒤 빚더미 가족을 돕느라 시간은 더 없었던 작가는 서빙, 점원, 노래방 도우미, 대필 작가, 여행·모텔·인터뷰 기사 등 가리지 않고 처리하는 프리랜서 등을 하면서 가난하고 힘든 시기를 겪었다.
"장편소설 집필은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있는지, 긴 시간 한 글자 한 글자 두드릴 수 있는지, 그리고 구상해놓은 모든 생각이 진짜가 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갖가지 상황이 닥치지만, 모든 시련을 통과해야만 작품이 완성된다. 내 가장 큰 장점은 잘 버틴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리 큰 기대가 없다. 그리하여 내 초고가 언제나 못 봐줄 만큼 끔찍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용감하게 쓰고, 고치고 또 고치며 나아간다." (p.79)
우리는 종종 자신의 재능 없음만 탓하고 열정이나 노력의 부재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대하곤 한다.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러하다. 글을 쓰는 일이든, 그림을 그리는 일이든, 혹은 악기를 연주하는 일이든 그 분야의 타고난 천재보다는 긴 시간을 들여 끝없이 노력한 이가 그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을 때때로 잊어버리곤 한다. 꿈은 있지만 자신에게 타고난 재능이 없다고 풀이 죽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1부 '내가 걸어온 창작의 길', 2부 '창작자에게 건네는 열 가지 조언', 3부 '프리랜서 업무 지침서' 등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천쉐 자신의 회고록인 동시에 재능은 없고 열정만 가득한 모든 꿈쟁이들에게 건네는 희망가라고 할 수 있다.
"친구 말로는 내가 의지력이 강하다지만, 나는 의지력이 아니라 적응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능력이랄까. 나는 인내심이 대단하고 온갖 좌절을 딛고 일어서고자 온 힘을 쥐어짤 수 있다. 갖가지 질병과 함께해왔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개발했다. 우리는 반드시 가장 강해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더 멀리 걸어가기를 기대할 수는 있다." (p.147)
천쉐 작가와 같은 노력형 인간의 성공기를 읽고 나면 갑자기 없던 힘이 치솟고 주먹에도 불끈 힘이 들어가지만, 그것도 잠시 열정 생성의 유효기간은 생각처럼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나는 천쉐처럼 의지력이 강한 사람도 아니요, 어떤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아니기에 그저 타인의 성공을 부러워하거나 때로는 누군가의 열정을 응원할 뿐 내가 직접 나서서 추진하지는 않는, 말하자면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때로는 가벼운 인간에 속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따금 금세 지칠 듯한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분수에 맞지도 않는 큰 성공을 욕심내기도 한다. 그래도 하나 잘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반성을 잘한다는 것.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어떤 거창한 계획을 하나 세울까 고민 중에 있다. 멀지 않은 시점에 통렬한 반성이 이어질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