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국에는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독서란 본디 그런 것이지요. 아무리 반복하여 읽고 또 읽어본들, 읽었던 것을 되짚어 생각하고 유추해 보아도 글을 쓰기 전에 당신이 의도했던 바에 정확히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서란 글쓴이의 생각에 이르고자 할 것이 아니라(어쩌면 글쓴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글을 읽음으로써 독자가 생각하는 방식이 예전과 달라지는 것을 꾀하는 일련의 행위를 일컫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독서란 이전과 달라진 방식으로 도출된 자신의 생각을 읽는 행위일 테지요.


이와 같은 오류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리에서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윤석열이 집권했던 지난 3년 동안 실제로 국정을 담당했던 사람이 어쩌면 그의 아내인 김건희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특검의 수사나 돌아가는 주변 정황으로 볼 때 점점 사실처럼 굳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윤석열을 추앙했던 세력들은 이제 '윤 어게인'을 외칠 것이 아니라 '김 어게인' 또는 '건희 어게인'을 외치는 게 옳을 듯싶은데, 그들은 여전히 '윤 어게인'을 외치고만 있습니다. 한심하고 미련한 행위이지요. 그와 같은 행위는 한마디로 자신들의 오류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술이나 먹고 사우나나 하던 윤석열은 지금처럼 감옥에 남겨 놓는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국정 운영자였던 김건희가 돌아오기를 열망하는 게 거리에 나온 지지자들의 현실적인 선택일 텐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까닭이지요.


독서의 효용은 이렇듯 많은 이의 생각을 수용하거나 차용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글을 읽음으로써 내 생각의 틀을 바꾸고, 달라진 생각의 틀을 통하여 새롭게 도출된 나의 생각을 읽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나의 옛 생각을 버리고 새로워진 나의 생각을 읽는 게 진정한 독서라는 뜻이지요. 우리가 독서의 의미에 대한 대중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처럼 나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거리의 무법자들을 향해 그들의 오류를 정정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나의 의견을 받아들일지 그렇지 않을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입니다.


현실에서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기란 눈앞에 있는 사람의 생각을 표정만 보고 읽어내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아닌 타인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삶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김건희의 지시를 받았던 박성재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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