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의 정원
안리타 지음 / 디자인이음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영상 이미지를 문자로 전환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왜곡이 따르게 마련이다. 아무리 노련한 작가라도 그것만큼은 피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즐겨 읽는 글에도 왜곡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름다운 왜곡'이라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흔히 보이는 풍경이 독자들에게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또는 평범한 일상이 다시없는 감동으로 읽힐 수 있다는 건 작가의 글이 그에게 내재한 '아름다움'의 변환장치를 통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아름다움의 변환장치를 수시로 점검하고 가다듬어야 한다. 아름다운 것만 보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는 것도 그중 한 방법이지 아닐까 싶다. 물론 아름다운 글을 읽는 것은 작가에게도, 독자들에게도 더없이 큰 선물이지만.


"사슴뿔 같은 고목의 자태와 산천의 벗겨진 얼굴도, 가슬가슬 메마른 들판의 품도 봄바람이 스친 자리엔 초록이 물들고 살이 올랐다. 봄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생명이 되살아난다.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햇볕을 쬐면, 빛들이 몸의 구석구석 언 세포를 깨우며 혈관을 타고 돌았다. 자연의 혼이 바람을 일으켜 인간의 혼을 깨우는 기운이 생동하는 계절이었다."  (p.32 '초봄' 중에서)


안리타 작가의 산문집 <리타의 정원>은 이렇듯 '아름다운 왜곡'으로 빼곡하다.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 이 글을 나는 왜 읽고 있는가? 하는 의문에 싸일 때가 있다. 글을 읽는다고 딱히 해가 될 것 같지도 않지만 말이다. 내게 익숙한 자본주의 논리로 보자면 작가의 글을 열심히 읽는다고 해서 돈이 될 것도 아니요, 언젠가 삶의 보탬이 될 것 같지도 않은데, 다만 책을 읽는 데 필요한 지금의 시간과 노력을 무참히 소모하고 있다는 게 약간의 손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잡초처럼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나 삶에서 소중한 것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쓰레기장에서 살더라도 내면에는 꽃밭의 아름다움을 키우는 시간, 아귀다툼의 각박한 세상에서 살더라도 사랑의 온도를 1도씨 올려보겠다는 의지는 다른 이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 삶의 기억, 내 영혼의 언덕에 꽃 한 그루 심는 일이 아닌가. 그것을 어찌 한낱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랴.


"자신을 고독 속에서 마주하지 못한다면, 고독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자립하고, 자존하고, 실존적인 삶을 살 수 없으니까, 스스로가 나의 세계를 살지 못한다면, 마음이 왠지 늘 불안하고 불행해지고 마니까, 나는 마음의 중심에 늘 고독의 축대를 놓는다. 흔들리는 외부의 마찰이 조금씩 사라져갈 때까지 자전하며 이 중심의 축을 포기하지 않는다. 동시에 자신의 고독 속에서 마주한 풍경들이 아프지 않도록 어루만져준다."  (p.164 '고독예찬' 중에서)


나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현실을 아름답게 왜곡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안리타 작가가 '마음의 중심에 늘 고독의 축대를 놓는' 것처럼 이 현실을 아름답게 왜곡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변환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날것의 현실을 그저 묵묵히 견디며 살아내고 있을 뿐 '아름다운 변환'이나 '아름다운 왜곡'은 내 몸 어디에서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럴 만한 체질을 타고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름다움의 변환장치'를 나도 알지 못하는 아주 어린 시절에 영영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나의 문장들이 나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나를 추상할 것이고, 누군가는 나라는 사람을 자신의 세계와 함께 상상해볼 것이다. 수풀에 피어 있는 들풀들은 그 존재 자체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들풀을 어떻게 묘사할지, 바라봐주는 자의 마음이 완성한다. 그것은 내 세계를 벗어난 타인의 몫이므로, 나는 당신의 세계가 이제 이 문장을 완성해주기를 늘 기다린다."  (p.208)


오락가락하던 계절의 진행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고 있는 듯하다. 나는 가을 볕이 반가운 사무실 베란다 창가에 앉아 한 잔의 차를 마셨다. 따사로운 햇살이 까무룩 낮잠을 불러오지만, 계절이 내딛는 느릿느릿한 걸음이 차마 아까워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바람도 없는 그런 하루였다. 안리타 작가의 시선이 마냥 부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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