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인근의 공원에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야자매트가 깔린 공원 둘레의 산책로에는 운동복을 입고 뛰거나 걷는 사람들로 붐비고, 공원 한편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이용하려는 몇몇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그 옆에 마련된 간이 족구장에서도 코트에 공이 꽂힐 때마다 서로 함성을 지르며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공원 여기저기에 놓은 벤치에는 노인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어떤 사람은 그런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습니다. 공원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의 한 손에는 반려견의 목줄이 들려 있었습니다. 여전히 초록이 우세하지만 공원의 나무들도 이제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있습니다. 나뭇가지에는 언뜻언뜻 보이는 딱새와 까치와 비둘기들이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남유하 작가가 쓴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읽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겠지만 마음이 약한 나로서는 차마 읽을 수가 없어서 책꽂이 한켠에 고이 꽂아 두었던 책입니다. 여전히 나는 읽을 수 없는 부분을 차례로 건너뛰며 몇몇 꼭지를 겨우 읽을 뿐입니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무조건 걸었다. 미세먼지가 심하면 마스크를 쓰고 걸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걸었다. 아이처럼 엄마를 부르며 울면서 걸었다. 사람이 없는 길을 골라 걸었다. 간혹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울음이 저절로  잦아들었다. 사람이 지나가면 다시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걷고 울다 떠오른 말이 있었다. 슬픔을 걷다."  (p.251)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삶의 고통이 찾아올 때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특별한 처방전을 펼쳐들곤 합니다. 나는 속으로 '지금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는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삶(my life)'이 펼치는 서사다.'라는 생각을 마치 세뇌를 하듯 몇 번이고 되뇌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뇌를 한 채 바라보면 나의 삶이 펼쳐지는 모습은 마치 내가 예전에 읽었던 누군가의 평전이나 전기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로부터 나의 삶을 분리시키는 방법은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매우 극단적인 처방인 셈입니다.


반면 니시 가나코가 쓴 에세이 <거미를 찾다>는 낯선 타지에서 작가 자신에게 찾아온 유방암 발병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아주 담담히 사실적으로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거미를 찾다>와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번갈아가며 읽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두 권의 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을 듯하기 때문입니다.


"수술 당일,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바깥은 아직 한밤중이었다. 7시까지는 물을 마실 수 있어서 끓인 물을 마시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수술 후에는 팔을 올릴 수 없으니 앞이 벌어진 옷을 입는 편이 낫다고 들었다. 그래서 전날에 준비해 둔 면 소재로 된 흰 잠옷을 입었다. 일본에 있는 친구 리사가 보내준 것이었다. 남편과 아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편지를 써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p.188~p.189)


우리가 사는 삶은 시간에 맞서 투쟁하는 투쟁의 기록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각각 다르고, 주어지는 환경도 서로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시간에 맞서 싸우게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로 그 사실이 무서워 주춤 물러설 때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나와 내 시간의 싸움에 개입할 수도 없고 도와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만의 분투가 필요한 고독한 싸움일 뿐입니다. 아까운 10월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나는 공원 산책로를 남들처럼 몇 바퀴 돌았을 뿐입니다. 산책을 하듯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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