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는 고랑 어디쯤에 얕은 웅덩이 하나 파 놓으면 나의 시간은 그쯤에서 잠시 멈출 수 있을까. 미래를 잃고 잠시 멈춘 웅덩이 속의 시간은 그렇게 남은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가며 자맥질하듯 들끓게 될까. 천국보다 얕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더러 행복과 유사한 어떤 추억을 손안에 움켜쥘 수 있을까. 길었던 추석 연휴를 마치고 출근한 직원들의 얼굴에 드리운 피로의 그늘은 오늘의 하늘처럼 어둡기만 했다. 연휴 내내 흐리고 개는 일이 반복되던 날씨는 연휴가 끝난 오늘도 관성처럼 지속되고 있다. 사람들도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관성처럼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페트라 펠리니의 소설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은 소설이라기보다 차라리 서사를 동반한 철학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독자를 훈계하거나 명령하는 투의 일반적 철학 서적처럼 읽기 곤란한 소설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잔잔하고 감동적인 서사를 기본 베이스로 깔고 있지만, 이따금 부드럽게 등을 토닥이는 듯한 어떤 경구들이 톡 쏘는 양념처럼 이야기에 넋이 나간 독자들의 정신을 환기시키곤 한다.
"나는 앞날을 예상하고 있고, 많은 것을 이해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왜 죽음을 두려워할까라는 점이다. 삶을 두려워한다면 그건 이해가 된다. 어제 케빈과 나는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는 모든 것, 정말로 모든 것이 불안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삶은 맹렬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거기 부응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또 실패한다.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항상 뭔가 증명해야 하고, 자기 자체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슬프다. 정말 슬프다." (p.84)
소설 속 주인공인 린다의 생각이다. 린다의 나이는 고작 열다섯 살. 린다는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어떤 인물보다 더 어른스럽다. 중증 치매 환자인 후베르트 할아버지의 24시간 요양보호사 에바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일주일에 세 번(월요일, 수요일, 토요일) 할아버지를 돌보는 경험을 통해 열여덟 살이 되면 깨끗하게 세상을 등지려고 했던 린다 역시 조금씩 변하게 되는데...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시간의 고랑을 따라 각자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어쩌면 연휴의 잔상과 여운이 자맥질하듯 현재의 시간에 뒤섞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