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나라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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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는 연예인 Y 씨가 자신을 비난하는 팬들에 대한 수준 낮은 대응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내란 정국에서 강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며 윤석열의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했던 S 목사가 주최한 한 행사에 Y 씨가 참석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는데, 이에 대해 그의 행동이 부적절했다는 팬들의 비난이 있었고, 이를 참지 못한 Y 씨가 자신의 SNS에 팬들을 조롱하는 듯한 사진을 올렸던 것이다. 자신의 이마에 초성 'ㅂ ㅅ'으로 된 부적절한 단어를 쓰고, 양 볼에는 손가락 욕설을 의미하는 그림을 그려 사진을 찍은 후 SNS에 올린 것인데, 그는 사진과 함께 "널 믿은 내가 XX이지. 맘껏 실망하고 맘껏 욕해. 너희에겐 그럴 자유가 있어. 내가 자살하긴 좀 그렇지 않아?"라는 글도 써서 화를 자초했던 것이다.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행사에 참여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비난이나 칭찬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터, 대개의 성숙한 연예인은 그와 같은 비난에 초연하게 대처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논란이 될 만한 행사에 자신이 참석했다는 건 그것이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부합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비난쯤이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지향하는 신념이나 가치관이 누군가의 비난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가수 이승환이나 이은미, 배우 겸 가수 아이유나 배우 조진웅 등의 행보는 오히려 담담하고 대범하다.


반면에 문제가 되었던 연예인 Y 씨의 미성숙한 대처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가치관에도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걸 사전에 알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나무라는 어른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까닭은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하나의 표식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믿는 아이는 어른에게 담담히 따지고 들 뿐 적어도 못된 행동으로 대들거나 어깃장을 놓지는 않는다. 허버트 조지 웰스가 쓴 <눈먼 자들의 나라>를 읽으면서 나는 물의를 일으켰던 연예인 Y 씨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어쩌면 눈먼 자들 속에서 눈뜬 이들을 비난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눈먼 세대가 이어진 지 벌써 14세대가 되었다. 그동안 이들은 볼 수 있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됐다. 시각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희미해졌고, 관련된 단어조차 다른 단어로 바뀌었다. 골짜기 밖 세상에 관한 이야기 역시 희미해지거나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골짜기를 둘러싼 벽과 바위 비탈 너머의 세상에 관한 모든 관심을 거두어들였던 것이다."  (p.45)


영국의 소설가이지 문명 비평가로 알려진 허버트 조지 웰스를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SF의 아버지'라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그가 쓴 소설이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나는 특이하게도 <세계사 산책>이라는 역사서 덕분에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그처럼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1904년에 발표된 단편 <눈먼 자들의 나라>는 영어 원문과 한글 번역본을 함께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내놓았지만 사실 분량면에서 부족함이 있다. 하여 소설과 함께 '편집자의 말', '독후 활동', '신윤옥의 문학과 음식', '저자 소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우월주의', '정상성에 관한 고찰', '필터버블' 등 소설의 내용을 다층적으로 음미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글들이 함께 실려 있다.


"1904년에 발표한 「눈먼 자들의 나라」는 시각이라는 감각을 중심으로 정상성과 우월성, 문명과 폭력의 문제를 통찰한 작품이다. 외부에서 온 이방인이 공동체의 규범에 도전하지만, 공동체는 그의 '다름'을 병으로 간주하고 제거하려 한다. 웰스는 이 작품을 통해 계몽주의적 자만과 근대문명의 폭력성을 통렬히 풍자한다."  (p.135 '저자 소개' 중에서)


소설의 구성이나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에콰도르 안데스산맥의 오지에 세상과 단절된 채 눈먼 자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있다. 예전에는 문명과 통하는 출구가 있었으나 민도밤바 대폭발로 그마저도 막혀버렸다. 땅도 비옥하고 초지도 있어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이상한 질병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었고 그렇게 14세대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안데스 산맥을 오르던 스위스 등반객의 가이드로 참여했던 젊은 청년 누네즈가 절벽에서 떨어져 우연히 그 나라에 방문하게 되었고, 시력을 잃은 채 후각이나 청각 등 다른 감각기관을 발전시켜 온 시민들은 누네즈가 볼 수 있는 세상을 아무리 설명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모든 걸 체념한 채 시민 중 한 사람인 야콥의 종이 되어 살게 된 누네즈는 그의 막내딸인 메디나를 사랑하게 된다. 남들과 다른 누네즈의 행동에 대한 의사의 처방은 결국 눈을 수술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메디나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수용해야만 하는데...


"누네즈가 편히 잠든 곳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눈먼 자들의 골짜기는 2킬로미터 아래의 거대한 구덩이처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햇살이 내려앉아 사방에는 온통 빛이 만연했지만, 골짜기 안쪽으로는 안개와 그림자가 어둠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누네즈가 몸을 누인 언덕은 온통 밝은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P.97)


정보가 범람하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우리는 종종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이른바 '필터 버블'의 환경에 갇혀 눈먼 자들의 나라에 살고 있는 듯한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대다수는 나이가 많거나 경직된 사고의 소유자이지만, 젊은 사람들 중에도 더러 그런 사람들을 마주칠 때면 우리는 꽤나 당혹스러워진다. 그것은 마치 세상을 볼 수 있는 누네즈가 세상 자체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보는 풍경을 설명하는 것처럼 무용하고, 그로 인하여 때로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연예인 Y 씨에게 우리가 어떤 설명도 할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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