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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ㅣ 소담 클래식 4
버지니아 울프 지음, 유혜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7월
평점 :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있어 하루 24시간은 무척이나 긴 시간이다. 이는 은퇴 후 행동반경이 좁아진 이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명제로 작용한다. 하루는 길고 한 달은 짧은 혹은 하루는 길고 1년 역시 짧은, 때로는 짧게 느껴지는 이런 모순은 노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어렵지 않은 마술이다. 하루의 길고 지루한 흐름 탓에 몸이 배배 꼬이는 것은 물론 크게 달라지지 않는 창밖 풍경을 열심히 관찰도 하고 좁은 거실을 괜스레 오가기도 하지만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이를 재촉할 방법은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이처럼 공간이 고정된 채 시간만 흐르는 삶의 비대칭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떻게든 시간과 공간이 맞물리는 삶의 층위를 향해 나아가도록 종용한다. 우리가 꾸려가는 삶의 형태는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하는, 4차원의 보편적인 구성이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고정된 공간을 보충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과거의 기억을 재생한다.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과거 어떤 시점의 공간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과거의 한 공간을 살게 되거나 과거의 한 공간에서 잠시 빠져나와 현재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이중의 삶을 살게 된다. 바람직한 삶의 형태라고는 보기 어렵지만 말이다. 이와 같은 형태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기법이지만 시공간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흔한 형태이기도 하다.
"그것은 끔찍한 고백이었지만(그는 다시 모자를 썼다), 쉰세 살이 된 지금은 누구라도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생 그 자체, 인생의 매 순간순간, 한 방울 한 방울, 여기 이곳, 지금 이 순간, 햇살 속 리젠트 공원에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사실은 지나치게 많았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모든 맛을 끄집어내기에는 한평생은 너무 짧았다. 모든 즐거움, 모든 의미를 다 끄집어내기에는 말이다." (p.143~p.144)
버지니아 울프가 1925년에 출간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하원의원 댈러웨이의 부인인 클라리사가 겪은 6월의 어느 날 하루를 독자들에게 선보임으로써 우리들 각자가 사는 삶의 구성방식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깨닫게 한다. 이 소설의 화자인 클라리사는 저녁에 있을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꽃을 사러 집을 나선다. 런던의 거리와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 그녀가 보고, 만나고, 대화하고, 목적하였던 꽃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길지 않은 시간 속에 30년 전의 추억과 현재의 상황이 교차한다. 더불어 작가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클라리사 한 사람의 인생에 셉티머스의 삶을 대비시킨다. 전쟁 후유증으로 환각증에 시달리는 셉티머스는 매 순간 죽음의 유혹에 내몰린다.
"그는 그 한 가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죽음은 도전이었다. 죽음은 의사소통을 하려는, 자신들을 피해 가는 중심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을 하려는 시도였다. 친밀했던 관계는 멀어지고, 황홀함은 시들고, 사람은 혼자였다. 죽음에는 포옹하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자살을 한 이 청년은 자신의 보물을 들고 뛰어내린 걸까? "만약 지금이 죽을 때라면,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이다." 언젠가 흰옷을 입고 내려오면서, 그녀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p.328)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지만 소설을 구성하는 두 축은 화자인 클라리사와 중간중간 노출되는 셉티머스의 이야기이다. 파티를 통해 하루를 고단하게 보낸 지인들의 피로를 풀어줌으로써 그들에게 내일 다시 살아갈 힘을 부여하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믿는 클라리사와 이제나저제나 죽음만을 생각하며 죽기 위해서 하루를 넘기는 셉티머스의 대비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극과 극으로 벌어질 수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하겠다. 많은 이들이 오늘에 이어 내일을 저 잘 살기 위해서 오늘을 마감하지만, 더이상의 삶이 부담스러워 오늘을 삶의 마지막 말로 선택하는 이도 있다는 걸 소설은 클라리사가 보낸 6월의 어느 하루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에게 망각은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배은망덕은 마음을 좀먹을 수도 잇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끝없이 쏟아지는 이 목소리는 무엇이든 몰고 갈 것이다. 이 맹세든, 이 화물차든, 이 삶이든, 이 행렬이든 아무튼 한데 감싸, 실어 갈 것이다. 마치 거친 빙하의 물결을 타고 얼음이 뼛조각, 푸른 이파리, 떡갈나무를 잡고 몰아가듯이 말이다." (p.246)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바람에 독자들로 하여금 때로는 혼란에 빠지게 할 때도 있지만, 문장 곳곳에서 드러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색은 한 권의 소설을 통한 한 권의 철학책 읽기를 끝낸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오늘은 한 주를 마감하는 금요일. 휴가를 떠난 사람들로 사무실은 한산하고 창밖에선 말매미의 울음소리가 주말 한낮의 시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자신의 삶이 힘들다고 자살을 꿈꾸는 건 오직 인간밖에 없다는 사실이 말매미의 울음에 섞여 씁쓸한 기분을 자아낸다. 삶의 연속성을 위해 너는 저렇게 간절히 울어본 적 있는가, 말매미가 내게 묻고 있는 듯하다. 주말 한낮의 그 뜨거운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