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후문을 통과하여 편도 1차선의 작은 도로를 건넙니다. 오른쪽에 있는 초등학교 건물을 등지고 나는 매일 아침 오르는 산의 입구, 그 낡은 계단을 향해 발을 내딛습니다. 하늘엔 손을 길게 뻗으면 닿을 듯한 먹구름이 둥둥 떠다닙니다. 오늘은 개천절. 휴일의 나는 평일에는 가지 않던 더 먼 곳까지 가곤 합니다. 참나무와 아카시아 나무가 빽빽한 군락을 이루는 산의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먹이를 찾는 청설모도 만나고 마른 낙엽을 뒤지는 참새떼와 마주하기도 합니다. 산의 정상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깔딱고개를 힘겹게 통과하면 완만한 구릉을 만납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구릉의 중심부엔 수십 년 된 소나무 군락이 있고, 주변에는 굴참나무와 산벚나무도 보입니다. 나는 소나무 둥치를 등지고 앉아 건너편 능선을 바라봅니다. 부쩍 낮아진 기온과 숲을 통과하여 불어오는 바람에 나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이른 아침의 풍경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합니다. 나는 그렇게 소나무 둥치에 기대어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나의 등산 일기와는 다르게 정치권의 뉴스는 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옵니다. 그것은 대개 대통령실에서 비롯된 뉴스입니다. 어처구니없고 실소가 터지는 일은, 정치인도 아니고 특별한 관련도 없어 보이는 영부인의 행보가 정치권을 들었다 놨다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가 조작의 방조범 혹은 공범으로 의심되어 조사를 받았던 것은 물론 고가의 화장품 세트와 양주, 디올백 등을 받아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 등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을 일을 그렇게나 많이 하고도 모자랐는지 마포대교 위에서 경찰을 향해 일장 훈시를 하는, 이른바 대통령 놀이에 심취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공천개입과 당무개입 논란에 의심되는 녹취록과 증거가 속속 등장함으로써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보에 다들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불법과 탈법을 넘나들고 갈수록 점입가경인 그녀의 행보에 대해 법적으로 덮어주기 위한 검찰의 눈물겨운 충성 경쟁 또한 이 정권의 특색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당당하다면 특검을 수용하고 구속이 된다면 대통령의 특권인 사면권을 행사하면 될 터인데 대통령은 오직 거부권만 생각하고 다른 대안은 안중에도 없는 듯합니다. 그런 대통령을 믿고 어느 여인은 미친년 달밤에 널뛰듯 막무가내 행보를 하고 말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도 없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미개한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을 요즘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게 나라냐?'는 말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요즘입니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배추 한 포기의 가격이 만 원을 넘나들고, 깻잎 한 장 가격이 100원 안팎인 미친 물가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와중에 어느 여인의 막무가내 행보가 대한민국 국민의 화를 돋웁니다. 긴 여름을 빠져나왔건만 여전히 여름에 머무는 듯 열이 납니다. 머리에서 치솟는 열기는 바깥 기온이 떨어져도 좀처럼 식지 않습니다. 불현듯 가을을 맞은 우리는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라는 말로 이 가을을 영문도 모른 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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