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대던 여름 햇살이 조금씩 한산해지고 있습니다.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배회하는 여름 햇살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면서 나는 삶의 신산스러운 고비마다 비슷한 넋두리를 되풀이하던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견디기 힘든 여름이었어요."라고 지금 내가 말한다면 어머니는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생전의 모습처럼 담담하게 "사는 게 어디 단 한 번이라도 만만할 때가 있겠니."라고 하셨을까요. 나는 이따금 한때 나의 어머니셨던 그분이 참으로 멀게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2024년의 길었던 여름이 제 갈 길을 터벅터벅 걸어 우리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습니다.


엊그제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취임 후 두 번째로 가진 기자회견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총평하자면 국민들의 분노를 키운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의정 갈등의 대치 국면으로 인해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이 시점에 대통령의 상황 판단은 그야말로 최악이었고, 친일 반민족 인사들의 대거 등용으로 인한 반감 또한 다시 불을 지피는 형국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이 아무런 현실 인식도 없이 "비상진료체제가 잘 가동되고 있다."며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답변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제 주변에도 야간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결국 집에서 숨을 거둔 유가족분이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병원에서 야간 응급실 환자를 돌볼 의사가 부족하거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마당에 '비상진료체제가 잘 가동되고 있다.'고 말하는 대통령이라니... 이제는 국민 모두가 자신의 건강은 제 스스로 돌봐야 할 듯합니다. 야간에는 사고가 나서도, 절대 큰 병에 걸려서도 안 됩니다. 응급실에 간다고 해도 응급실 문턱을 넘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집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지금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 중증인지 경증인지 정도는 미리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의학 지식을 갖는 것은 필수적인 요구사항이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쌓으셨다면 아플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셈입니다. 그렇지만 야간에는 여전히 위험하다는 걸 인지하고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하겠습니다.


제10호 태풍 '산산'이 느리게 일본 열도를 강타하면서 많은 피해를 입힌 듯합니다. 다른 때 같으면 유난히 정이 많은 우리나라 국민의 관심과 안타까움이 답지했을 텐데 올해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고위 공직자 중에는 이웃 나라 일본의 재난 상황에 대해 인류애적 차원이 아니라 동포애적 차원의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곳곳에 설치된 독도의 조형물을 없애고,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역사에서 지우려 함께 노력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노고를 치하하지는 못할망정 일본은 독도 주변에 군함을 보내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수시로 순시선을 보내며, 한국 정부에게는 독도 방어훈련을 일절 하지 말라는 요구까지 한다고 합니다. 국가의 영토를 보전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다른 깊은 뜻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길고 길었던 8월이었습니다. 낮에는 여전히 더위를 느끼고, 말매미의 울음소리도 여전하지만 계절은 한 발 앞서 가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과거로, 오직 과거로만 퇴행하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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