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지구 온난화'니 '기후 위기'니 하는 말들은 이제 하도 많이 들어서 오히려 그 느낌이 퇴색한 듯하다. 그런 말들이 마치 구석기 시대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인간 스스로가 자초한 위기이니 그 고통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것 또한 인간이 되는 게 당연하지만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동식물들이 그 고통을 함께 견디고 있음을 상기할 때, 때로는 다른 누군가에게 큰 죄를 지은 듯한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에어컨 냉매를 거쳐 나오는 인공의 바람을 한 달 이상 쏘이고 나니 들판 너머로 불어오는 자연의 바람이 문득 그리워진다. 이제는 그 느낌마저 생경하다. 저 숲을 거쳐온 바람이 자연스레 내 몸을 더듬고, 나를 통과한 그 바람이 저 멀리 외로운 누군가의 이마를 짚고 어깨를 토닥인다는 사실이 그저 새삼스럽고 놀랍게 느껴지는 것이다. 날씨와 관련하여 '이열치열(以熱治熱)'이나 '이한치한(以寒治寒)'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한 달, 그러나 한반도를 달구었던 것은 비단 날씨뿐만이 아니었으니 뉴스가 뉴스를 덮고 이슈가 이슈를 덮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다.


어쩌면 현 정부의 국정기조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 또는 '지행불일치(知行不一致)'가 될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말 따로 실천 따로인 셈이다. 그럴 수도 있나 싶겠지만 현 정부가 초창기부터 일관되게 유지하는 기조임은 분명하다. 끝없이 '자유'를 주장하면서 압수수색과 고소.고발, 휴대폰 검열을 일상화하고, 끝없이 '공정과 상식'을 주장하면서 임명직 고위 공직자는 모두 혈연, 지연, 학연 등 권력자와 인연의 끈을 유지하는 이들로 채우는 것은 물론 최고 권력자와 인연이 닿은 자는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러도 죄를 묻지 않고, '애국'이나 '헌신'을 주장하면서도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는 모두 테러리스트나 공산주의자로 모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행동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고 한 자가 같은 입으로 '왜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 벌어지는지, 어떤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를 듣고 있는 국민은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을 고위 공직에 임명하는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곳곳에 설치되었던 독도 조형물들을 약속이나 한 듯 일거에 제거하고 있다.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여야 할 대통령이 자국의 영토에 대한 수호 의지가 없다면 이를 어찌할 것인가. 소녀상에 대한 테러를 감행하는 자들이 좀비처럼 등장하더니 이제는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독도에 대한 이미지마저 지우려 하고 있다. 일본 천황의 신민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일제강점기로의 회귀를 바라는 미친 자들이 21세기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긴 여름의 끝에는 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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