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품성이나 인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소로 병원보다 더 적격인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병원의 목적이 원래 아픈 이를 치료하는 것이 전부인지라 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으레 자신의 몸 어딘가가 아프거나 혹시 아프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로 온 신경이 곤두선 상태에 처하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건강이나 생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과도하여 타인에 대한 배려나 관대함 또는 평소라면 있었을지도 모를 인내와 여유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저 멀리 내팽개치고 말았다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병원에 도착하여 진료를 받고 최후까지 남는 것은 결국 자신의 신체에 대한 안위와 철저한 이기심뿐, 여타의 다른 품성은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자신 한 몸 챙기기도 바쁜 사람이 주변의 다른 사람까지 살필 여유가 어디 있겠냐고 항변한다면 뭐 나로서도 달리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니까.
아들의 간단한 수술과 병간호를 위해 요 며칠간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병동에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감수해야만 했었다. 2인실의 병실에 입원을 하였던 게 지난 월요일, 화요일에 수술 일정이 잡혀 있던 까닭에 입원 수속과 간단한 검사를 마친 후 병실 생활에 접어들었는데, 함께 병실을 쓰게 된 초로의 환자분과 인사를 나눌 때까지만 하더라도 앞으로 닥칠 며칠이 내게 얼마나 험난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간단하게 씻을 장소를 찾았다. 각 병실의 화장실은 환자만 사용할 수 있고, 보호자는 별도로 마련된 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해야 했다. 이러다 보니 밤늦은 시각까지 샤워실의 물소리가 크게 들렸고, 같은 병실의 환자분은 처방받은 약의 부작용 탓인지 속이 울렁거린다며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게다가 간호사를 수시로 호출하여 자신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은 물론 간호사에게 온갖 짜증을 다 쏟아내기도 하였다. 나는 이런저런 소음과 불편한 잠자리, 제대로 씻지도 못한 찝찝함으로 인해 좀처럼 잠이 들 수 없었다. 보호자용 간이침대는 어찌나 좁던지 돌아 누울 수도 없고, 허리가 아파 오래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잠을 한숨도 못 잔 채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소란 속에서도 수술을 앞둔 아들은 깊이 잠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수술을 마친 아들은 수액과 진통제 등을 연결한 여러 개의 관과 검사 장비로 인해 불편하고 욱신거리는 통증에 짜증이 날 만도 했지만,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자신의 화를 속으로 삭이는 듯했다. 다행이었다. 폐암 1기로 자신의 폐 1/3을 절제했다는 옆의 환자는 수요일에도, 목요일에도 전혀 호전되지 않은 듯 보였고,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되었던 아들은 목요일 오후나 금요일에 퇴원해도 된다는 의사의 말이 떨어지자 곧바로 퇴원 절차에 들어갔다. 하루를 쉬더라도 집에서 쉬었으면 하고 바라던 나도 아들의 의견에 적극 지지 의사를 보냈다. 우리는 그렇게 입원 4일 만에 병원을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은 44번째 맞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 그날의 아픔이 아직도 생생한데 희생자들을 폄훼하고 부정하려는 세력들이 지금도 여전히 준동하고 있다. 가족을 잃은 유족이나 생존자들의 아픔을 내 것인 양 가슴에 보듬지는 못할지언정 상처를 후벼 파는 파렴치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병원에서의 누적된 피로 탓인지 까무룩 졸음이 쏟아진다. 1980년의 아픔을 모르는 듯 하늘은 그저 푸르기만 하다. 한낮의 기온은 초여름처럼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