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꼴통 보수 춘추전국시대
완연한 봄이다. 한낮에는 두꺼운 외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기온이 오른다. 아파트 인근의 공원에 나가 보면 가족 단위의 행락객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활동하기에 적당한 날씨와 이제 막 움을 틔우는 새로운 생명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이 계절에 집 안에만 머무르는 것도 못할 짓이지 싶다. 사람들의 가벼운 발걸음을 따라 걷다 보면 이따금 눈에 거슬리는 장면도 포착된다. 그것은 바로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서글픈 모습이다. 그게 왜 눈에 거슬리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나라의 출산율 저하와 노인 인구 급증에 따른 시급한 복지 문제도 문제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변에는 온통 아이들 웃음소리와 그들을 따라나선 젊은 부부들로 공원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공원이 온통 노인들 천지로 변해버렸으니 씁쓸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총선이 멀지 않은 요즘은 그야말로 꼴통 보수의 춘추전국시대를 보는 듯하다. 이렇게 다양한 꼴통 보수가 존재할 줄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다양한 종류의 꼴통 보수들이 각자의 특색을 내세우며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현 정권의 도움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례는 너무 많아 꼴통 보수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된 지 오래이고, '위안부도 강제징용도 없었을 뿐 아니라 독도를 우리나라 땅으로 볼 근거도 부족하다'고 했던 자는 독립기념관 이사로 취임했고, 난교를 예찬하고 서울 시민들의 시민의식과 교양 수준이 일본인의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싶다'며 일본인의 시민의식을 추켜세웠던 자는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받고, 후원금을 빙자하여 접대를 받고 삥을 뜯었던 자는 문제가 없다며 공천을 받았다가 부랴부랴 공천이 취소되기도 했고,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북한군의 개입설 등을 주장한 자는 공천이 취소되자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하겠다고 발표하였으며,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장본인인 이토 히로부미를 장학 사업의 좋은 선례로 소개한 자는 여전히 국회의원 후보 자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사 정권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던 현직 기자를 향해 회칼을 휘둘렀던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하며 기자들을 협박한 자는 현재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대변인으로 재직 중이다.
꼴통 보수의 다양한 모습을 언제 우리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목격할 수 있었을까. 과거에는 자신들의 생각과 일반 대중의 생각 사이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에 자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통령실이 제일 선봉에 서서 그들을 우쭈쭈 해주는 바람에 그들 역시 이게 잘하는 일인 줄 착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서로 다투듯이 '나는 이런 종류의 꼴통 보수입니다', '나는 저런 종류의 꼴통 보수입니다' 하면서 내세우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그러다가 범죄가 들통나기라도 하면 유배지인 호주 대사로 출국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