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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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한 작가가 평생 동안 쓴 모든 작품을 읽는 것, 이른바 '전작 읽기'에 도전하여 자신이 뜻한 바대로 성공하는 경우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읽고자 하는 작가가 살아생전 몇 작품 남기지도 못한 채 요절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장수를 한 것으로도 모자라 작품 활동에 성실했던 다산 작가라면 더더욱 힘이 들 것임은 물론이다. 그래서인지 한 작가의 모든 작품 중 널리 알려진 문장 혹은 그에 덧붙여 발췌자 본인이 마음에 두었던 문장들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 발췌본이 종종 눈에 띄기도 한다. 이러한 발췌본은 문장을 가려 뽑은 발췌자의 안목이 전적으로 책의 질을 좌우하겠지만, 잘만 한다면 전작 읽기는 숫제 엄두도 내지 못하는 나와 같은 게으른 독서가에게는 꽤나 유용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작가의 작품 성향이나 철학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는지 전작(全作)을 읽지 않고도 조금쯤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을 쉽게 얻으려는 얄팍한 생각 자체가 낯을 뜨겁게 만들기는 하지만.


"이 책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유명 작가, 버지니아의 문장들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그의 글 속에는 여러 차례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물상, 자연현상의 의식적 표현 등 버지니아의 글은 때로 난해하게 읽히기도 해 종종 독자들에게 좌절감을 주기도 하니까요."  (p.17 '프롤로그' 중에서)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은 북 큐레이터이자 고전문학 번역가인 박예진 작가에 의해 발췌된 문장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박인환 시인의 시 '목마와 숙녀'에도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고안한 선구자이자 영국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평가되기도 한다. 1920년 인도 뭄바이에서 그녀의 숙모가 낙마 사고로 숨지자, 숙모의 유언으로 매년 500파운드의 연금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제인 오스틴의 팬이었고 그녀에 관한 훌륭한 평론을 남기기도 했던 버지니아 울프. 1882년에 태어나 1941년 59세의 나이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까지 그녀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책의 표지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이 책은 '그림자로 물든 버지니아의 13작품 속 문장들'이다.


"sentence 061

 I understand Nature's game-her prompting to take action as a way of ending any thought that threatens to excite to pain.

나는 자연의 순리를 이해합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흥분이나 고통을 끝내기 위한 행동을 유도합니다."  (p.74)


우리는 어쩌면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서만 말할 뿐 그녀가 열정을 갖고 몰두했던 작품 활동과 그녀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그녀의 내면에 흐르는 철학이나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는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태도는 우리 이전 세대에 살았던 다른 남성 작가와의 비교에서도 타당한 일이 아니며,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에서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되는 측면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적 성취는 그녀의 열정과 노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sentence 201

The way to rock oneself back into writing is this. First gentle exercise in the air. Second the reading of good literature. It is a mistake to think that literature can be produced from the raw. One must get out of life... one must become externalised; very, very, concentrated, all at one point, not having to draw upon the scattered parts of one's character, living in the brain.

다시 글쓰기로 돌아가는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가벼운 운동을 합니다. 두 번째로 좋은 문학을 읽습니다. 문학이 날것에서 생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은 일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은 외부의 존재로 변해야 합니다. 매우 집중되어 하나로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합니다. 분산하지 말고, 머릿속에서 생활해야 합니다."  (p.194)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여류작가를 명명하는 것이 자신의 시적 낭만과 지적 허세를 뽐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쯤으로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댈러웨이 부인>이나 <등대로> 등 그녀가 쓴 몇몇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감히 그런 이유로 버지니아 울프를 입에 올리지 못할 것이다. 상류사회 출신이지만 성차별이 만연했던 시대를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끝없이 싸워야만 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녀를 평생 괴롭혔던 정신병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감히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 앞에 '여류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못할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다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훌륭한 작가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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