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알고 먹는 거니? - 그림으로 보는 우리 집 약국
최서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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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어디가 크게 아프거나 병치레가 잦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장모님도, 아내도 약사 면허를 갖고 있었던 탓에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거나 필요한 약을 약국에서 구매를 하게 될 때, 나는 언제나 아내의 컨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 발행하는 처방전 역시 약국 제출용과 환자 보관용 처방전을 함께 발급받아 환자 보관용 처방전은 언제나 아내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학교에서 받은 성적표는 언제나 부모님께 척척 가져다주는 착한 학생처럼 말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매가 가능한 일반 의약품 역시 아내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살 수 없었던 건 물론이다. 

 

그림 그리는 약사 최서연의 저서 <약, 알고 먹는 거니?>를 읽으면서 나는 약과 관련된 많은 추억들이 떠올라 한동안 상념에 젖곤 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았다. 1장 '감기에 걸렸어요', 2장 '상처가 났어요', 3장 '속이 불편해요', 4장 '피부에 뭐가 나요', 5장 '여성들만 아는', 6장 '이럴 땐, 어떤 약을 써야 하나요?'. 각 장의 소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직면하게 되는 약의 오남용과 약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기 위해 약사가 아닌 일반인도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약이라는 전문적인 지식을 만화 형식의 친근한 도구에 접목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약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 하지만 일상에서 약 사용법을 제대로 알고 대응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감기 몸살이 심하게 걸렸던 나는 가까운 병원에 들러 처방을 받았고, 약국에 들러 약을 구입하기 전에 늘 하던 대로 아내에게 처방전을 보여주었더니 대뜸 다른 병원에 가서 처방전을 다시 받으라는 거였다. 나는 아픈 몸으로 운전을 해서 집과 멀리 떨어진 다른 병원을 방문한다는 게 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단순한 감기 몸살에 대한 처방전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아내의 태도는 의외로 완강했다. 나는 결국 다른 병원에 들러 처방전을 받았고 아내의 허락 하에 약국에서 처방전에 적힌 약을 구입할 수 있었다. 아내는 내가 처음에 받았던 처방전의 약은 스테로이드 성분이 과하게 포함된 약이라며 다음에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갈 일이 있어도 그 병원은 절대 가지 말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지금은 성인이 된 아들에게도 아내의 관심은 각별했다. 어렸을 때 아토피 증상이 조금 있었던 아들은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었던 날이면 여지없이 밤에 제 몸을 박박 긁어대곤 했다.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왔던 아들은 다른 날부다 심하게 제 몸을 긁어댔고, 그날 마침 아들의 곁에서 잠이 들었던 나는 아내를 깨워 아들이 바르던 연고를 어디에 뒀는지 물었다. 아들의 침대보에는 아들의 것으로 보이는 핏방울 몇 점이 묻어 있었고, 이를 보고 놀란 나는 연고를 듬뿍 짜서 발라주려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아들의 상처 부위에 아주 조금만 발라주고는 내 손에 있던 연고를 낚아채고는 안방으로 사라졌다. 스테로이드 성분이 포함된 연고라서 정말 필요한 경우에 아주 조금만 발라야 한다는 말과 함께, 그렇지 않으면 점점 내성이 생겨서 더욱 독한 연고를 바르게 될 거라는 경고와 함께 말이다. 아내의 특별한 관심 속에서 자란 아들은 이제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했고,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활기찬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

 

아들과 나의 개인 약사였던 아내는 지금 세상에 없다. 나와 아들이 약에 대한 조언이 필요할 때면 이제 늙으신 장모님께 여쭙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내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느끼곤 한다. 약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내가 약과 관련된 이런저런 책을 읽거나 긁어모으는 이유도 아내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과한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사용하는 약에 대해서 언제든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고 강조 또 강조를 잊지 않았던 아내의 목소리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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