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끝자락의 냉기가 채 여물지 않은 성긴 봄기운의 틈새로 스민 탓인지 새벽 등산로는 여전히 겨울과 같은 한기를 품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른 갈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별빛도 없는 하늘엔 살 오른 반달이 홀로 쓸쓸했다.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 탓인지 새벽에 산을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인근의 아파트에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한 집 두 집 연이어 불빛이 밝혀지고 있었다.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은 또 그렇게 분주한 하루를 준비하는 듯했다. 한강 작가의 시 '새벽에 들은 노래 3'이 생각나 옮겨 적는다.
새벽에 들은 노래 3
한강
나는 지금
피지 않아도 좋은 꽃봉오리거나
이미 꽃잎 진
꽃대궁
이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누군가는
목을 매달았다 하고
누군가는
제 이름을 잊었다 한다
그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새벽은
푸르고
희끗한 나무들은
속까지 얼진 않았다
고개를 들고 나는
찬 불덩이 같은 해가
하늘을 다 긋고 지나갈 때까지
두 눈이 채 씻기지 않았다
다시
견디기 힘든
달이 뜬다
다시
아문 데가
벌어진다
이렇게 한 계절
더 피 흘려도 좋다
한 편의 시를 나직나직 읊어보는 일은 '서랍에 넣어 두었던' 저녁을 몰래 꺼내 보는 것처럼 운치가 있는 일이지만 갈수록 메말라가는 정서는 시와 나 사이의 거리를 시나브로 멀어지게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