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권력의 서열과 아내 멧돼지의 질투
진흙 목욕을 즐기는 우리 멧돼지들에게 있어 날씨는 꽤나 민감한 문제입니다. 웬만하면 참고 견디는 게 일상인 우리들입니다만 춥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씨는 멧돼지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조건이지요. 그런 날에는 가뜩이나 먹이를 구하기도 어려운데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는 몇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따뜻했던 날씨 덕분에 2023년 새해를 기분 좋게 시작했습니다만 어제부터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역마다 편차가 심해서 어떤 곳은 침수가 되기도 했고, 어떤 곳은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날씨는 여전히 푸근합니다. 비가 그치고 다음 주에는 다시 또 추워진다고 합니다만 나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아내 멧돼지와 함께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는 집에서건 밖에서건 아내 멧돼지가 무섭습니다. 이처럼 아내 멧돼지를 극도로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은 무척이나 오래된 일입니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나의 성격과는 다르게 아내 멧돼지는 앞뒤 가리지 않는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차이에서부터 나는 아내 멧돼지의 말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아내 멧돼지를 두려워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성격 차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뒷골목 시절 내가 저질렀던 온갖 비리를 아내 멧돼지가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인간 세계의 속담이 멧돼지 세계에서 통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내가 털끝만 한 흠이라도 잡혀 갈라서는 날에는 나의 비리가 만천하에 밝혀지는 걸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보다 두려운 것입니다. 이런 약점을 아내 멧돼지라고 모를 리 없습니다.
다른 멧돼지들은 모르는 사실입니다만 리더 멧돼지로서의 나의 권력은 한낱 허울뿐인 권력일 뿐 모든 권력은 아내 멧돼지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멧돼지의 속성 상 다산과 개체수 조절에 별 관심이 없는 관계로 나는 한때 나와 공부도 같이 했고, 뒷골목 생활도 했던 암컷 멧돼지 한 마리를 다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임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아내 멧돼지로부터 온갖 욕설과 비난을 들어야만 했고, 어떻게 하면 그 암컷 멧돼지를 자를 수 있을까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마침 사직서를 제출한다기에 나는 단칼에 해임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그 암컷 멧돼지에게 특별한 애정이나 관심이 없다는 걸 아내 멧돼지에게 간접적으로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그 암컷 멧돼지는 머리도 좋고, 얼굴도 예뻐서 젊은 시절 많은 수컷 멧돼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아내 멧돼지인지라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나는 사실 세계 최강이라는 날리면 멧돼지를 두려워하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날리면 멧돼지보다는 일본의 기시감 멧돼지에게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정책이라면 뭐든 강력하게 지지하고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와 같은 의사는 아내 멧돼지와 나의 선대 멧돼지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나의 선대 멧돼지뿐만 아니라 나의 똘마니 멧돼지들의 조상들 역시 과거 일본 멧돼지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식민지 시절 당시 많은 보살핌과 지원을 받았으므로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게 멧돼지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많은 멧돼지들이 죽고 강제 노동에 끌려갔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일본의 기시감 멧돼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의 생각에 반하는 야당의 멧돼지들이나 일반 멧돼지들의 저항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력하게 막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알던 암컷 멧돼지를 부위원장직에 임명했던 나의 실수를 만회하고 아내 멧돼지로부터 신뢰와 애정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