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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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렇게 말하면 우습지만 어렸을 적 나의 꿈은 서점 주인이었다. 좋아하는 책도 원 없이 읽을 수 있고, 더불어 책을 팔아 생계도 유지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셈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서점을 둘러싼 그때의 환경과 지금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고, 서점 주인을 꿈꾸는 일은 마치 경제적 행위에서 자유로운 어느 갑부의 소소한 일탈이나 가벼운 취미생활쯤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서점 운영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택가의 작은 동네 서점을 열고 싶어 하는 이들의 소식을 인터넷이나 주류 언론을 통하여 더러 접하게 되는 걸 보면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꿈을 먹고 사는 이들이 건재하다는 걸 재차 확인하게 된다.


황보름의 소설 <어서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를 읽는 동안 내 어렸을 적 꿈에 대한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휴남동 서점을 개업한 주인공 영주의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난 비현실적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나 역시 꿈과 현실의 이분법적 논리에 충분히 젖어든 까닭이다. 낭만을 잃고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논리에 너무도 쉽게 순응해 온 탓인지도 모른다. 낭만을 잃는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주도권을 다른 누군가에게 아주 손쉽게 넘겨버리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하는 자위가 선택권을 잃은 내 삶에 대한 완전한 보상으로 작용할지 나는 여전히 그 문제에 대해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휴남동 서점의 생활이 안정되려면, 그래,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영주는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말을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로 바로 치환하기가 싫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휴남동 서점이 안정되려면 무엇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라고."  (p.185)


다니던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늘 일에 치여 살던 영주. 어느 날 갑자기 그녀에게 찾아온 번아웃 증후군과 남편의 무관심으로 영주는 결국 이혼을 하고 그 길로 서점 자리를 찾아 나섰다. 낡은 집을 수리하고 서점을 개업한 후에도 영주는 언제나 자리에 앉아 책만 읽거나 우울한 표정으로 자주 울었다. 그리고 얼마 후 반도 채워져 있지 않았던 책장도 채우고, 자기 대신 커피를 내릴 바리스타도 채용한다. 책도 늘고, 독서 모임도 생기고, 글쓰기 강의도 시작되면서 휴남동 서점은 명실공히 서점의 면모를 갖춰간다.


"영주는 지금 마음껏 창인을 생각하고 있다. 과거를 떠올리고 있다. 꾹꾹 눌러두었던 생각과 감정을 꺼내놓고 있다. 과거의 이미지와 기억들이 가슴을 쿡쿡 찔러 오지만 이제는 버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껏 눌러두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기에 여전히 그녀 안에 그 모든 것이 고여 있는지도 몰랐다. 앞으로는 흘려보내야 할 것이다. 다시 얼마간 울어야 한대도 그래야 할 것이다. 그렇게 과거를 흘려보내고 또 흘려보내다 이젠 과거를 떠올려도 눈물이 나지 않게 될 무렵이 되면, 영주는 가볍게 손을 들어 그녀의 현재를 기쁘게 움켜쥘 것이다. 더없이 소중하게 움켜쥘 것이다."  (p.301)


서점 대표인 영주기 힘을 내면서 그녀 주변에 하나둘 모여드는 사람들. 대학 졸업 후 끝없는 구직 실패에 지칠 대로 지친 민준이 영주를 대신하여 2년 계약의 바리스타 알바를 시작하였고, 남편 때문에 화날 일이 많았던 로스팅 업체 대표 지미, 사는 게 아무 재미가 없다는 고등학생 민철과 그런 아들이 걱정되면서도 늘 응원 격려를 아끼지 않는 희주, 서점 구석에 조용히 앉아 뜨개질과 명상을 하는 정서, 좋아하던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삶을 그만둔 후 공허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국어 문장 공부에 매달렸던 작가 승우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휴남동 서점을 이끌어가는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매출에 신경쓰지 않고 쉬면서 딱 2년만 해보겠다고 계획했던 영주도 결국 처음 생각을 접고 다시 휴남동 서점의 미래를 구상하는데...


"영주가 해외 독립책방을 둘러보며 깨달은 점은 모든 책방이 그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개성은 책방을 운영하는 주인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개성을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건 용기였다. 주인의 용기가 손님에게 가닿기 위해 필요한 건 진심이었다. 그러니까, 영기와 진심."  (p.358)


누구나 그렇겠지만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다 보면 '과연 성공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한 번쯤 빠져들게 된다. 이것은 마치 생각의 늪과 같아서 한 번 빠져들면 들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악순환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의 늪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숫제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의 방책이겠지만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순간 딱 멈추고, 생각하자 싶으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인간은 늘 갈등하고, 엉뚱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하긴, 자신이 계획한 대로, 예상 가능한 모습으로 삶이 흘러간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없을 것인가. 나의 삶도 그리고 다른 모든 이의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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