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봄.

매일 아침 오르는 산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가지마다 연녹색 새순이 돋고 다소곳한 진달래도 꽃을 피웠다. 숲은 나름의 질서 속에 오가는 계절을 준비하곤 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산 주변은 온통 새로 들어선 아파트로 빼곡하다. 그렇게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었던 몇 년 동안 숲과 그것에 기대어 살던 동물들이 수난을 겪었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소리에 민감한 뱀들이 제일 먼저 자취를 감추었고, 겨울철이면 먹이를 찾아 산 아래쪽을 향해 겅중겅중 뛰던 고라니도 보이지 않고, 이따금 나타나 나의 아침 산행길에 동무가 되어주던 너구리도 찾을 길 없고, 흔하디 흔하던 청설모도 모두 사라졌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숲의 어둠을 몇몇 산새들이 겨우 생명의 기척을 내고 있을 뿐이다. 숲은 이제 콘크리트 바다에 둘러 쌓인 작디작은 섬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언젠가 자연이 모두 사라지고 인간 홀로 남으면 인간다워지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사람에게는 '애정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어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동물에게 과도한 애정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개든, 고양이든 동물과 친밀해지는 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고, 그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가 조작과 허위 이력의 피의자가 처음 보는 경찰견을 꼭 끌어안고 찍은 사진이 온 국민이 꼭 알아야 하는 소식은 아닐 터, 요즘 기자들은 뉴스거리가 어지간히도 없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그런 범죄를 저지른 자가 입은 후드티나 슬리퍼를 두고 검소하다는 둥 매진이 되었다는 둥 하는 가십 거리를 뉴스 지면에 실어준다는 것도 참으로 창피한 일이 아닌가. 대한민국의 기자는 참으로 한가한 사람들이다.


며칠 전에는 제74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 보수 정권의 대표가 참석하는 건 어찌 보면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묵념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당당하게 이동하는 태도는 뭐란 말인가. 지각 입장도 미안한 일인데 하물며 묵념도 하지 않고... 그런 오만방자한 태도가 보수의 품격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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