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에 친구가 존재한다는 건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들을 둔 엄마의 심정처럼 어느 한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편들어 줄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를 퇴근길에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이 친구의 사정이 여간 딱한 게 아니었다. 코로나 정국에 사정이 좋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위례 신도시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에 LH 투기 사건이 터지면서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푸석하고 핼쑥해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국토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은 대한민국의 사정상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황석영의 소설 <강남몽>에도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부동산 투기는 그 뿌리가 깊다. 그렇다면 이전 정부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많은 재산을 축적한 대부분의 부호들이 개발지에 대한 고급 정보와 투기에 가까운 공격적인 부동산 매입을 통해 재산을 형성해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부동산 투기에 대한 지금과 같은 전국 규모의 대대적인 단속을 단 한 번도 실행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전 국민이 재산의 90% 이상을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마당에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GDP에서 건설업의 비중이 15~20%로 OECD 국가의 평균에 비해 매우 높은 우리나라의 사정상 GDP를 끌어올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수단이 공적자금을 통한 SOC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빚내서 집 사라'고 한 데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해충돌방지법'의 통과를 미적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국회의원인 자신들조차 그 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법을 제정하여 어느 하나가 좋아지면 좋았던 다른 하나가 나빠지는 건 피할 수 없다. 예컨대 '김영란법'이 그러했고, 증권거래법이 그러했다. '김영란법'이 통과될 때만 하더라도 얼마나 말이 많았던가. 오죽하면 누더기법이라고 했겠나. 주가를 조작하는 소위 '작전 세력'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증권거래법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작전 세력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대대적인 단속의 칼을 빼들지 않는 까닭은 단순한 엄포나 소문만으로도 주가가 크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주식투자자들이 마치 이익단체처럼 정부의 정책에 저항할 수 있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 기반한다. 사회가 투명해지고 공정해지는 건 좋은데 그로 인해 손해를 본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하는 꼴은 정부로서도 달갑지 않은 것이다. 차라리 어지간한 부패는 눈감아주는 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다.
지금은 크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합동수사본부의 가시적인 성과가 발표되고 투기자에 대한 처벌이 시작되면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번 겪고 나면 그와 같은 단속이 언제 또 재개될지 모르는 까닭에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전에 비해 꺼려하거나 매우 조심스러워할 것임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대적인 부동산 투기 단속을 통해 일반 국민의 재산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냐, 아니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질끈 눈을 감을 것이냐. 현 정부는 어느 정부도 시도하지 않았던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야 말았다. 그 바람에 공인중개사인 친구는 개점휴업 상태의 어려운 시절을 감내하고 있고...
오늘은 금요일. 친구가 어렵다는데 개발지구에 땅이라도 한 필지 사주면 좋겠지만 그럴 주제가 못되니... 위로 전화라도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