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 15인의 여성 작가들이 말하는 특별한 마흔의 이야기
리 우드러프 외 지음, 린지 미드 엮음, 김현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중년이 되어 내가 나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배울 것들이 남아있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 오랜 세월, 숱한 경험 뒤에도 여전히 변할 수 있는, 놀랄 수 있는, 그리고 삶이 나를 뜻밖의 곳으로 인도할 여지를 남겨둬야 하다니. 말하자면 석 달 동안 걸을 수 없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신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그 상황에 대처해나가는지, 그리고 그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쓸모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나가는지. 이미 그들이 충분히 쓸모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p.175)

 

인간의 기대수명을 80으로 본다면 마흔은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나이가 된다. 그래서인지 마흔이란 나이는 누구에게나 제법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40대의 나이가 된 자신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구상했던 삶의 목표를 이루었으나 그 헛헛함에 방향을 잃을 수도 있고, 육아와 집안일에 치여 나이도 잊은 채 하루하루를 분주히 살아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마흔은 삶의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일 수 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마흔의 나이에 바라보는 자신의 꿈, 가족, 우정, 사랑, 자아, 일, 결혼, 아름다움, 시간의 흐름 등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15인의 여성 작가들이 말하는 특별한 마흔의 이야기,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는 책을 읽는 독자에 따라 자신의 미래일 수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자신의 현재일 수도 있고, '그래, 그랬었지.' 하면서 추억할 수 있는 자신의 과거일 수도 있겠다.

 

"삶의 이 시점은 마치 긴 날숨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너무 지치고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 삶에 그 어느 때보다도 할 일이 많은 것 같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십 대에 접어든 지금,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여전히 걱정이고 절대 다시 오지 않을 날들에 슬픔을 느낄지라도 우리는 지금 이대로를 감사하게 여길 거라 생각한다."  (p.16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15인의 여성 작가들이 인생의 반환점인 사십 대를 어떻게 겪고 있는지, 그들의 인생관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사랑과 우정, 가족을 바라보는 생각이나 관점은 어떤 변화를 보여왔는지, 시간의 대가로 얻은 지혜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상실과 죽음을 조금씩 체감하면서 다가올 미래는 또 어떻게 준비하고 맞을 것인지 등 각양각색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각각의 여성 작가들이 내세운 소제목만 보아도 재미있다. '사는 건 똑같은데 집세만 올랐지'를 쓴 메건 디움, '우리가 외모를 논할 때 나누는 이야기들'을 쓴 슬론 크로슬리, '나는 서른아홉에 배우가 됐다'를 쓴 질 카그맨,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사람들'의 줄리 클램,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의 수진 림 등 각자가 하고픈 말은 다 다르지만 길다면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그들이 깨우쳤던 많은 이야기들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뭉클하게 만든다.

 

"이만큼 살아보니 알겠다. 사람들이 어른으로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는 이유는 진짜 힘이 들기 때문이다. 나이를 몇 살 먹었건 간에 정말 엄청난 일을 당하면 누군가가 달려와 나를 도와주길 바라게 된다."  (p.204)

 

오늘 오전에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치매 검사를 받을 엄마를 대학병원으로 모셔 가기 위해 휴가를 내고 시골에 와 있다는 전화였다. 코로나로 인해 일체의 외부 활동이 없었던 그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요즘 들어 부쩍 이상한 말을 한다는 거였다. 오전에 통화를 했었는데 그 사실을 깜빡하고 오후에 다시 전화를 거는 등 심상치 않다는 게 친구의 설명이었다. 나 역시 요양병원에 모신 엄마의 전화를 시도 때도 없이 받고 있는지라 자식 된 자의 불안감을 잘 알고 있었다. 동병상련의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의 전화에 괜스레 목이 메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불쌍해지는 거지." 했더니 친구 왈, "사는 게 고통이지." 하였다. 하루 종일 하늘이 어둡다. 비가 오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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