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의 가족을 설명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마뜩잖은 일일지도 모른다. 가족이란 마치 신기루 같아서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리 달아나 버리는, 실체는 있지만 끝내 그 실체를 붙잡을 수 없는(붙잡을 수 없다기보다 너무 크고 방대하여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가족을 설명한다는 건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향해 '너 자신을 개관적으로 설명해 봐.'라고 했을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연한 것처럼.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 아닐까." (p.93)

 

대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자신의 아버지를 설명하는 일은 무척이나 껄끄럽고 부담되는 일이었던 듯하다. 최근에 출간된 그의 책 <고양이를 버리다>는 순전히 자신의 아버지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쓰인 일종의 일기나 메모에 가까운 책이지만 문장 한 구절 한 구절을 찬찬히 되짚어보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애틋한 심정과 아버지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에 대한 그리움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오래전부터,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언젠가는 문장으로 정리해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좀처럼 시작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갔다. 가족에 대해 쓴다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고,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쓰면 좋을지 그 포인트가 잘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그 짐이 내 마음에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었다." (p.96 '작가 후기' 중에서)

 

누군가에 대해 소개하려 들 때 겉으로 드러나는 객관적인 사실들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그와 얽힌 몇몇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전달하고 그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걸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가 역시 아버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주로 다루지 않고, 어느 여름날 작가와 그의 아버지가 집에서 키우던 암고양이를 버리러 해변에 갔었던 기억을 책의 첫머리에 먼저 쓰고 있다. 물론 객관적 사실을 무시한 채 에피소드 위주로 쓰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1917년 교토 어느 절집의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세이잔 전문학교를 다니던 중 징집되어 중국 대륙의 전선에 치중병으로 보내졌던 사실, 포로로 잡힌 중국 병사를 군도로 척살했던 그 당시의 기억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것 등을 건조한 문체로 쓰고 있다. 작가의 아버지 교토 국제대학을 졸업한 후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 생활을 하다 2008년 고인이 되었다. 아버지의 기대와는 다르게 공부에 별 의욕이 없었던 작가는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그 이후 절연에 가까운 부자 관계로 지냈다고 한다.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쓰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아주 미소한 일부지만 그래도 한 조각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p.97~p.98 '작가 후기' 중에서)

 

누군가를 부자 관계로 만난다는 건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강제적인 할당에 가까운 일이지만, 그와의 관계를 통해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형성하고, 나아가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하나의 역사를 일궈나가는 과정은 돌이켜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 역시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역사적 소명 의식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런 까닭에 이것을 글로 쓰는 일이 끝내 미루고 싶은 부담스러운 일이라 할지라도 결국 참고 해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마음 한 구석의 응어리를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글로 써서 남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으랴. 하루키답지 않은 지극히 건조한 문체가 왠지 낯설게 느껴졌던, 그래서 더욱 쓸쓸했던 11월의 어느 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