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입동, 입동' 이렇게 서너 번쯤 되뇌면 어느 순간 램프의 요정 지니의 손에 이끌려 겨울 한복판으로 뚝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오늘은 활동하기에 적당한 기온과 따뜻한 햇살, 그리고 미세먼지로 탁해진 시야, 바람에 날리는 분분한 낙엽 등으로 겨울의 느낌과는 다소 거리가 먼 풍경입니다. 우리는 이렇듯 매 순간 자신의 느낌이나 바람 또는 기대 속에서 현실을 왜곡하기도 하고, 현실을 부정하거나 스스로가 만든 상상의 세계로 달아나기도 합니다. 지긋지긋한 현실로부터 달아나듯 말이지요.

 

2,30대의 젊은 시절에는 대개 자신이 바라는 자아상을 막연하게, 혹은 추상적으로 설정하거나 이러이러한 모습이면 좋겠다는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곤 합니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등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창에 비치는 석양을 바라보며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나와 얽힌 추억 몇 가지를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공공연히 밝히곤 했습니다. 삶의 최대 목적이 마치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 것인 양, 그런 삶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인 양 떠벌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욕심이나 허황된 이미지의 추구야말로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빠트리고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삶의 모습을 외면하도록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위해서 살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잊혀지기 위해 살아갈 때 우리들 각자는 자신이 가장 원하고 바라마지 않던 삶의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지금은 조금쯤 알고 있습니다. 타인의 기대와 욕망에서 멀어지려고 애쓸 게 아니라 타인에게 바라는 나의 기대를 내려놓는 일이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나에게 바라는 기대와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눈에 나는 이런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언제든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게 내 삶의 목적이라면 나는 더 대담하게 나의 삶을 계획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우리는 그런 욕망을 생의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게 나와 같은 보통 인간의 한계이자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입동입니다. 그렇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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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9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