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땐 바로 토끼시죠 - 하기 싫은 일은 적당히 미루고 좋아하는 일은 마음껏 즐기는 김토끼 묘생의 기술!
지수 지음 / 카멜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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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그동안 나는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겠다는 생각도,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의 갈래들을 붙잡겠다는 생각도 없이 되는 대로 무작정 책을 읽거나 떠오르는 상념들을 그저 무심히 흘려보내면서 하루하루를 건너왔던 것인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인간관계의 법칙처럼 글을 쓰는 일도 이와 같아서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내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더불어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는 어떤 현상으로 인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곡을 만드는 등의 소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게으른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도 마음 한켠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음을 휘젓는 어떤 현상의 원인을 캐거나 결과에 대해 궁금해하는 등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호기심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예술가들에게는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현상으로부터 멀찌기 떨어진 채 떠오르는 그때그때의 주관적인 상념들을 하릴없이 끄적일 뿐이다.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쓰겠다는 생각이 사라지자 단행본에는 눈길조차 가지 않았다. 너무 쉽게 끝나버리는 결말이 다소 싱겁게 느껴지기도 했고, 몇 날 며칠을 두고 길게 이어지던 독서가 마냥 그립기도 했던 까닭이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고, 이따금 머리가 무거울 때면 김용 작가의 무협지를 읽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독서는 한없이 가벼워지거나 두터웠던 벽이 한순간에 우르르 무너진 듯 체계도 없이 무뎌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옮아왔고, 아들은 짧았던 여름방학을 마치고 비대면의 2학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으며, 더위가 사라진 아침 등산로에서 나는 더 많은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지수 작가의  에세이 <그럴 땐 바로 토끼시죠>를 펼치면서도 리뷰를 쓰겠다, 미리 작정을 하고 읽었던 건 아니지만 오래간만에 찾은 나의 블로그가 너무 휑뎅그렁한 느낌이 들었던 까닭에 리뷰를 핑계 삼아 뭐라도 끄적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지난가을 밴쿠버에 계신 작가의 엄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기 전날 '너무 골치 아프게 살지 말고, 하고 싶은 것, 잘 맞는 것을 찾으라고' 전화를 통해 말씀하셨고, 작가는 자신의 첫 책인 이 책을 통해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에 답을 해야만 했었다고 했다.

 

"세상을 살수록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다 보면 예술성이 발현될 여지는 줄어든다. 예술가로 사는 것은 아무리 따져봐도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시간과 체력을 투자해 공들여 글을 쓴 후, 종이와 나무와 지구 그리고 자신을 마주하기 민망했던 일은 어느 작가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자주, 매우 많이." (p.203)

 

그렇다. 이 책은 김토끼를 그린 지수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이자 평생을 예술가로 살겠다는 저자의 다짐이기도 하다. STEP 1. '도망칠 준비되셨나요?', STEP 2. '일단 뛰고 보는 거지', STEP 3. '지금 필요한 건, 호흡', STEP 4. '나의 페이스메이커들에게', STEP 5. '발길 닿는 곳 어디든'의 5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소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오지랖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 오직 자신만의 보조와 속도로 세상을 살아갈 것을 권하고 있다.

 

"회사만큼 내 시간과 건강에 비싼 값을 쳐주는 곳이 없다고 해도,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곳에 언제까지고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한 번뿐인 인생, 한정된 시간과 체력을 최대한 의미 있는 곳에 쓰는 것이 '돈 벌려면 치사해도 참고 사는 거야'라는 말보다 나에게는 더 당연하니까." (p.125)

 

하늘이 점점 드높아지고 있다. 계절이 깊어갈수록 그에 따라 세상도 더욱 투명해져야 하는데 사는 날을 늘려갈수록 세상은 점점 더 모르는 곳이 되어 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단절된 삶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막연한 상황도 모든 게 남의 일처럼 무덤덤해지는 요즘, 한 권의 책을 읽으면 으레 그에 상응하는 한 편의 리뷰를 써야만 했던 얼마 지나지 않은 나의 과거가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무작정 책을 읽고, 휑뎅그렁한 풍경을 지우기 위해 한 편의 리뷰를 쓰고 있다. 무심한 시간이 무덤덤한 일상을 쓰레기처럼 던져 놓는다. 하루가 어찌 흐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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