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봄을 즐기기도 전에 때 이른 초여름 날씨에 어리둥절했던 하루였다. 그러나 부처님 오신 날과 근로자의 날 그리고 주말 연휴로 이어지는 달콤한 휴가 덕분인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코로나19의 진정세가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마트에도 근래에 보기 드문 인파로 북적였다. 미덥지 않은 삶의 동아줄을 확인하면서도 하루하루의 일상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는 자각이 사람들을 저으기 안심시켰는지도 모른다.
이천의 한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있었던 화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지난한 삶의 현장에서 전해지는 암울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옛말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곤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밥이 곧 하늘인 현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의 위협에 다들 외출도 꺼려하던 요즘, 직접적인 살인 도구인 우레탄폼의 검은 연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야만 했던 그들의 거친 일상은 또 어떠했을지... 때 이른 무더위가 지나던 오월의 첫날, 그래 오늘은 근로자의 날이지. 근로자가 없는 달력에 붉은 글씨의 '근로자의 날'만 선명한...
우리는 이따금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과 같은 범죄자는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믿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착각에 불과하다. 만민중앙교회의 이재록 목사도, 지난 30여 년 간 자신의 교회에 다니는 여성 신도 9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거나 추행했다는 전북의 어느 목사도 선천적인 악인으로 보기는 어려울 터, 그들은 다만 범죄가 용이한 환경에 너무나 자주 노출되었을 뿐이다. 자신의 돈과 권력으로 너무도 쉽게 저지를 수 있었던 범죄와 그런 범죄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처벌은 집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은 그들로 하여금 절대적인 악의 편으로 내몰지 않았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들과 그들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던 사람들. 죄는 다만 처음이 어려울 뿐 두 번, 세 번은 비교적 쉬웠던 게 아닐까.
샌드위치 패널을 휩쓸고 간 이천의 어느 공사현장의 화마처럼 후끈한 열기가 한반도 전체를 달구었던 오늘, 그래 오늘은 공사 현장의 근로자도 없는 붉은 글씨 선명한 '근로자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