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은 이 싸움은 인간과 자연 중 어느 한쪽이 완전히 힘을 잃거나 무너지지 않는 한 결코 끝나지 않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다소 암울할 수도 있는 이 생각은 과장되거나 극단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예컨대 지금처럼 인간의 힘이 약화된 상황에서 계절이 제 색채를 되찾고 숨 쉬는 공기의 질이 좋아진 것만 보더라도 우리는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헛된 구호는 편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 앞에서 번번이 무너지곤 했다. 자연을 살리기 위한 인간의 희생이나 적극적인 노력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의 종말이 크게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과학자들의 거듭된 경고에 정치인들은 이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기껏 시늉만 해 온 셈인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그 경고가 단지 경고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피부로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자연의 자정 능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는 맑아지고, 계절은 제 색깔을 찾았고, 어우러져 사는 동식물들이 하나 둘 활기를 찾고 있는 것이다. <침묵의 봄>으로 유명한 레이첼 카슨은 자신의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여행해 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라 할 수 있다. 그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라고.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과감히 내어주고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을 듯하다. 길들여진 편리는 결코 떨쳐낼 수 없는 강력한 유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천,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누리는 편리와 잠깐의 즐거움은 가까웠던 이웃의 목숨을 대가로 주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 세상에 공짜란 없음을 뼈저리게 새긴다.

 

낮에는 한 차례 비가 쏟아졌다. 바람을 동반한 스산한 비였다. 불과 백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거리를 갈 때에도 습관적으로 차를 몰던 행위나, 한 번의 설거지에 독한 세제를 몇 번씩이나 눌러 짜는 행위나, 등산로를 걸으며 사탕 포장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행위나,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무심코 던져버리는 행위 등 우리가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들을 코로나19로 인한 참담한 희생을 겪으면서 통렬히 반성하게 되는 요즘. 축복과 신비를 되새기기에 앞서 속절없는 반성과 회개가 거듭되었던 오늘, 오늘은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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