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한순간에 후루룩 무너져내리는 것도, 무너지던 삶을 근근이 되살아나게 하는 것도 다 그리움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처럼 뭐라 말할 수 없는 봄이 온 세상에 가득할 때면 그리운 이름들을 가만가만 불러보게 된다. 그리움처럼 개나리가 피고, 배꽃이 피고, 연녹색 잎들이 세상을 물들인 들판에 그리운 이의 이름이...

 

봄햇살이 너무 좋아서 차를 몰아 근교로 나갔었다. 낮에는 코트를 벗어야 할 정도로 철이른 대위가 대지를 뒤덮었던 오늘, 농부들의 분주한 손길만이 봄의 고랑을 고르고, 나무들은 꽃을 틔울 준비를 서두른다. 허둥대는 계절의 전령들이 제 순서를 잊고 갈팡질팡 혼란스러웠던 한낮,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저 어둡기만 했다. 봄을 즐기기에는 코로나19의 그림자가 너무나도 넓고 짙었다.

 

인적도 끊긴 식당에서 칼국수 한 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마을을 가로지른 배꽃 향기가 후드득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오후. 그리운 이름들을 가만가만 되뇌어보면 흘러간 봄에 지불했던 소중한 시간들이 되살아날까. 석양이 물들고 있다. 느긋했던 마음이 불현듯 길지 않은 봄의 하루처럼 다급해지는... 한적한 도로를 속력을 높여 달려가는 차량들. 문이 굳게 닫힌 시골 성당을 둘러보았다. 한때는 삶의 이야기로 북적였을 이곳도 적막감만 감돌았다. 그러나 집으로 향하는 어느 사거리의 교회는 예배에 참석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그도 저도 아니면 이기적이라고 해야 할지... 이런 단순 무식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바이러스는 숙주를 필요로 하고, 인간의 무지는 바이러스의 통로가 되고 있다. 그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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