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행복하라 -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특별판, 샘터 50주년 지령 600호 기념판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사는 지역에도 코로나19 감염자가 추가되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공포심도 한층 높아졌는지 내일부터는 도서관도 문을 닫는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특별한 약속이나 모임이 없어진 요즘, 휴일이 다가오면 도대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고 집안에 틀어박혀 온종일 책만 읽는다는 것도 못할 짓이고, 인터넷으로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 몇 편이고 연속해서 보는 것도 그렇고, 무릎을 칠 만큼 좋은 방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자기 몫으로 주어진 짧은 시간의 휴식도 나는 이렇듯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되는데, 한정된 시간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몫의 삶을 어떻게 유용하게 쓸 것인가 고민하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참으로 딱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꼭 한 군데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 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 벌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 사증入國 査證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가 보고 싶다." (p.60)

 

법정 스님이 입적하신 지 벌써 10. 법문과도 같은 스님의 말씀을 인생의 등불로 삼았었던 까닭에 나 역시 스님께 빚을 진 채 살고 있지만 그 말빚을 갚기에는 내 삶이 보잘것없어 늘 미안할 뿐이다. 스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더없이 좋다. 군더더기가 없이 간단명료한 문장은 핵심을 벗어나지 않고, 이런 뜻일까 아니면 저런 뜻일까 오해할 일도 없다. 그래서인지 스님의 글을 읽으면 복잡했던 머리가 가지런히 정리되는 느낌이다. 맑고 개운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뜻을 모르고 읽어도 그 느낌은 여전하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그가 하는 행위에 의해 인간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비인간으로 타락할 수도 있다. 오로지 인간다운 행위에 의해서 거듭거듭 인간으로 형성되어 간다." (p.179)

 

법정 스님이 남긴 글들 중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가려서 뽑았다는 이 책은 1'행복', 2'자연', 3'', 4'나눔'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은 사람도 마음먹고 읽으면 두어 시간이면 다 읽을 만큼 두껍지 않은 책이다. 법정 스님이 열반에 드셨을 때, 나는 스님이 남긴 추천 도서('내가 사랑한 책들'에 실린 50권의 도서) 목록을 보며 긴 시간을 두고 스님이 권한 책들을 골라 읽었던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3''에 눈길이 갔던 게 사실이다.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욕심만 앞서는 까닭이다.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폐허가 되어 버린 원형 극장으로 고아 소녀인 모모를 찾아간다. 그들은 모든 것을 그 어린 소녀에게 털어놓는다. 소녀는 다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줄 뿐인데, 방황하는 사람들은 정착을, 나약한 사람들은 용기를, 불행한 사람과 억눌린 사람들은 신념과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눈을 뜬다." (p.144)

 

우리 모두가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이라며 어린 왕자처럼 삶과 죽음에 초연할 수는 없지만, 물욕이나 집착에 휩쓸리지 않고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사는 날까지 자유롭고 충만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 아니겠는가. 하루하루 날을 더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더해진 삶이 인간이 아닌 비인간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면 본인은 물론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그 시간들이 아깝다 여기지 않겠는가.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 스스로가 다음 생의 자신을 만들고 있습니다.'라는 스님의 준엄한 말씀은 느슨하게 풀어지려는 마음을 한순간에 다잡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요즘, 달리 할 일이 없으니 홀로 걷는 시간만 늘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산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도, 지저귀는 새소리와 분주한 청설모의 움직임도 어느 순간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오직 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과연 몇 %의 인간인가?'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 동안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을 맞으며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일지 않는 걸 보면 나는 폴 발레리의 시구를 그저 눈으로만 읽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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