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계획이나 대책도 없는 나날들이 흘러가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흘려보낸 날들이 지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음을 우리는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나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1년에서 1월과 2월은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시기일지도 모른다. 지키지도 못할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피곤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지켜나가려고 애를 쓰는 시기. 지나고 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지만 말이다.

 

지난해 내가 시골에서 만났던 어르신 중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던 분이 있다. 평생을 건설회사에서 보냈다는 그분은 정년퇴직을 하고 홀로 귀농을 하신 분이었는데, 시골에 와서 곰곰 생각을 해보니 직장 생활을 했던 수십 년 동안 오직 승진을 목적으로 밤잠을 설쳐가며 영어 공부에 몰두했던 게 도대체 다 무슨 소용이었나 싶더란다. 시골에 와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에 그 많은 세월을 투자했다는 게 당사자인 자신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더라는 말씀이었다.

 

그분과 함께 근처의 겨울 낚시터를 방문했었다. 나는 낚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낚시터의 호젓한 분위기는 좋아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낚시 바늘에 지렁이도 꿸 줄 모르는, 낚시에는 초보 축에도 끼지 못하는 문외한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종종 낚시터를 찾곤 한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호수 위에 초록빛 야광찌가 별빛처럼 떠있는 풍경이라든가, 석양이 비껴가는 오후의 호수 수면 위로 곱게 이는 물비늘이라든가, 물안개와 함께 깨어나는 아침 풍경이라든가 아무튼 낚시터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풍경들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여름보다는 낚시꾼의 발길이 뜸한 겨울 낚시터를 선호한다. 외진 곳에 좌대 하나를 빌려 빈 낚싯대를 드리운 채 몇 시간이고 있다 보면 세상 사는 게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고, 하늘을 나는 새들이 슬몃 부러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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