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 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지는가 아니면 무뎌지는가 하는 문제를 이따금 생각해보게 된다. 내 주변에도 명예퇴직을 한 친구들이 더러 생겨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의 신경은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이 더러 사달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고, 그들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정도가 너무 심한 게 아닌가 하는 불만도 불쑥 터져나오게 된다. 이런 상황을 여러 차례 겪다 보면 인간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간관계에 있어 점점 더 예민해진다는 결론에 이르곤 한다. 물론 인간이 태어날 때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를 놓고 성선설이 옳다 성악설이 옳다 하면서 결론도 나지 않는 무의미한 논쟁을 계속하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어떤 통계를 낼 수 없으니 인간은 각자 다 다르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세월에 따라 점점 무뎌지기도 하고 예민해지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달라지기도 하고...
그러나 산업화 시대를 겪어온 우리 세대는 지금 젊은 친구들이나 어린 학생들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조금 힘들었다고 할지라도 빠른 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조금 덜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당시에는 큰 변화라는 게 적어도 한 세대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었던 까닭에 사회 구성원들이 그 변화에 적응하고 학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변화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미처 적응도 하지 못했는데 또 다른 변화가 닥쳐오는 까닭에 변화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로 인해 사회 구성원이 받는 스트레스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이나 젊은 친구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는 까닭도,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갖는 까닭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전에 눈이 조금 내렸다. 아들은 방학이 무색하게 쉬는 날도 없이 학원을 나가고 있다. '희망'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요즘, 세월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신경이 무뎌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어 자포자기하는, 그런 인간들이 늘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신년인데 희망을 말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어쩌면 그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