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 카페 - 손님은 고양이입니다
다카하시 유타 지음, 안소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시골을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게 개와 고양이이다사람만 산다면 온종일 적막강산이었을 마을이지만 개 짖는 소리로 인해 마을은 조용할 새가 없다.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온 동네 개들이 전염병처럼 모두 짖게 되는 까닭이다그나마 고양이는 개처럼 요란하지도, 이방인을 위협하거나 귀찮게 굴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일에 관심을 둘뿐이다. 지난달에 방문했던 어느 시골집에는 노부부와 그들보다 한참이나 더 나이가 든 할머니, 말하자면 남편의 어머니이자 부인에게는 시어머니인 노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몇 마리인지 파악도 되지 않는 고양이 식구들 여러 마리와 함께.

 

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건 죽은 쥐를 새끼 고양이의 장난감이자 간식으로 제공했던 것. 밖에 있는 화장실로 가던 중 길 한가운데 놓인 쥐의 사체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런데 안주인 할머니의 푸념을 들어보면 고양이를 키우는 일도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시골에는 여전히 쥐가 많아서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는 있는데 그 사료값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힘든 건 동네 주민들이 여기저기 쥐약을 놓는 통에 죽으라는 쥐는 멀쩡하고 애먼 고양이만 죽는다는 거였다.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시골에서 하루 이틀 놀다 가는 건 좋지만 시골에 정착하여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순간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소설 <검은 고양이 카페>는 그때 만났던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고양이를 소재로 삼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는 다카하시 유타의 작품인 이 소설은 출판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마시타 구루미가 회사로부터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한 후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그러던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택배 상자에 담긴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 구조 작업에 나선다. 주변에는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고양이를 구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업급여도 끝나가고, 핸드폰 요금도 내지 못해 정지된 상태인 구루미는 월세마저 낼 길이 막막한 상태의 예비 노숙자 신세였다. 가까스로 고양이를 구한 구루미는 우산도 잃어버린 채 정신을 놓고 있는데 그때 마침 산책을 나왔던 가와고에의 유지 구로키 하나를 만나게 된다. 비에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 하나 씨의 카페에 들어선 구루미는 그곳에서 '카페 점장 모집(숙식 가능)'이라고 쓰인 모집 광고를 보게 된다.

 

"검은 고양이를 주운 다음에 구루미의 인생이 싹 달라졌다. 히카와 신사가 하나 씨의 카페와 인연을 맺게 해주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는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p.49)

 

검은 고양이를 구해준 다음날, 구루미는 하나 씨에게 취업을 부탁하기 위해 카페를 다시 찾는다그러나 카페에는 하나 씨 대신 검은 기모노 차림의 잘생긴 남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구로키 포'. 이 미남자의 정체는 바로 해가 지면 사람으로 둔갑하는 검은 고양이였다. 구루미와 포의 운명과 같은 첫 만남 이후 구루미에게 찾아온 놀라운 변화는 또 있었다. 고양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사람들은 구루미가 고양이의 마음을 읽는 능력까지 갖추었다고 믿게 된다.

 

"다음 날 아침에 구루미는 카페를 나섰다. 카페 바깥에는 전에 봤던 호랑이 무늬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외출하려고 차려입은 구루미를 보고 고양이들이 인사를 했다. "다녀오세요옹." ". 다녀올게." 대답하고 나서 구루미는 화들짝 놀랐다. 당연한 듯이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p.139)

 

구루미가 일하는 <커피 구로키>에는 검은 고양이 포가 점장으로 있고, 고양이와 대화가 가능한 구루미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람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은 없고 다양한 사연을 가진 고양이와 집사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게 된다. 집사 메구미에게 생긴 스토커 때문에 신변에 위협을 느껴 가출한 삼색 고양이 마게타, 자신의 애완묘 유리가 밥을 먹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어 찾아온 유미...

 

"세상에는 구루미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잔뜩 있다. 고양이 세 마리를 보면서 구루미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구루미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아 조금 당황스러웠다. 계속 원하던 것을 이제야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머물러야 할 곳과 동료들." (p.315)

 

마치 한 편의 동화와 같은 이 소설은 우리네 삶이 우리의 상식으로는 미처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순간의 결과만 보고 낙담하거나 좌절할 것도 아니고, 삶이 계속되는 한 검은 고양이 포를 만날 수 있는 기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음을 믿으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든 말이다. 경자년 새해를 몇 시간 남겨 놓은 오늘, 새해에는 검은 고양이 포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한 치의 불행도 용납할 수 없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 싶다.'나비야!' 하고 부르던 어느 시골집 할머니의 다정한 목소리가 가만가만 들릴 듯한 2019년의 마지막 날. 새해에는 조금 더 행복해지자, 마음 속으로 다짐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