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지시등도 켜지 않은 채 마치 내 차를 스치듯 무섭게 추월했던 차가 얼마 가지도 않아 사고로 멈춰 선 모습을 볼라치면 나도 모르게 속으로는 은근히 '쌤통이다' 하는 마음이 절로 들게 마련이지만 부서진 자신의 차를 궁상맞게 지켜보고 있는 사고 차량 운전자의 모습에 '저 사람도 참 재수가 없구나. 얼마나 황당할까?' 하면서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인생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나에게 사사건건 못되게 굴었던 사람을 어느 날 우연히 만났을 때, 처음에는 '너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하고 고소해하다가도 뒤돌아 서서 생각해보면 '저 사람 인생도 참 안 됐지 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은근히 서글퍼지기도 하고 말이다.

 

전에 만났던 어느 할머니 한 분은 지난해에 폐암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되신 분이었는데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그렇게 미웠었는데 죽고 나니 가끔 보고 싶다고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다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의식했던지 뒤돌아서서 흐르는 눈물을 서둘러 닦으시면서 "주책이야.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눈물을..." 하는 게 아닌가. 할머니는 의미도 없는 혼잣말로 민망한 분위기를 무마하려 한 것이었지만 나는 왠지 숙연한 느낌에 고개가 숙여졌다. "폐암은 마지막이 힘들다고 하던데 힘들어하시지는 않았어요?" 내가 여쭈었더니, "목에 구멍을 뚫어서 힘들어하지는 않았어. 그런데 그렇게 더 살고 싶어 하드만. 담배를 끊으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할 때는 들은 척도 않더니." 할머니는 여전히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을 거두지 못하고 계셨다.

   

크고 작은 슬픔의 마디마다

글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세월의 선반마다 켜켜이 쌓이는 먼지처럼

삶의 기억은 그렇게 쌓여만 가는 거라고

그러다 어느 순간 먼지처럼 흩어지는 거라고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것들과

도무지 무뎌지지 않는 아픈 기억들을 안고

한 세상 허위허위 살다 보면

나 때문에 아파할 다른 누군가를 곧 만나게 될지니

삶은 그렇게 대를 이어 슬픔을 상속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것인가.

 

그야말로 다사다난하기만 했던 2019년도 저물고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미움과 증오를 쏟아내며 입에 담지 못할 온갖 막말을 오히려 종교인을 통하여 들어야만 했던 한 해. 지옥이 있다면 종교인들이 제일 먼저 지옥 입장권을 들고 선착순 입장을 하였을 듯한 모습들. 꼭 해야 할 말도 절반쯤 덜어내어 누구보다 말을 아껴야 할 종교인들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배로 부풀려서 떠벌리는 세상. 그들로 인해 우리는 어쩌면 세상의 종말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서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2019년의 길고 길었던 시간들이 먼지처럼 흩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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