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마치 갓 들어온 신입생의 코를 납작하게 누르려는 듯 익숙해지지 않은 추위가 훅 하고 끼쳐온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추위 몰려온 탓인지 허리 통증이 왔다. 전에도 허리가 아팠던 경험은 없지는 않았으나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런 경험은 처음인지라 당혹스러웠다. 오전에 한의원을 찾아 물리치료를 받았다. 정말 오랜만에 부항도 뜨고 침도 맞았다. 내원하기 전보다 허리가 더 뻐근하고 굳어져서 걷는 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한 발짝을 떼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걸 아프지 않고서는 잘 알지 못한다. 느린 걸음으로 걷다 보니 보도에 쌓인 울긋불긋한 낙엽과 노란 은행잎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은행나무는 그루 수가 많지 않아 귀한 대접을 받았었다. 혈액순환 개선제의 재료로 쓰였던 은행나무 나뭇잎은 미처 물들기도 전에 훑어가는 바람에 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아주 귀했고, 어쩌다 볼라치면 책갈피에 끼워 곱게 말려 두곤 했었다. 지금은 냄새가 지독한 은행도, 수북수북 쌓이는 은행잎도 눈길조차 두지 않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프다는 핑계로 바쁠 때는 미처 읽지 못했던 책을 꺼내 놓기는 했으나 청개구리처럼 책에 눈길은 가지 않고 줄곧 엇나가기만 한다. 몸이 아프니까 만사가 귀찮아져서일지도 모른다. 메이위저의 소설 <제왕업> 몇 페이지를 읽었다. 미처 들어보지 못한 작가인데 필력이 대단하다. 다만 아픈 허리 탓에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 뿐이다. 어제 내가 방문했던 어느 마을의 어르신이 내 손에 들려주었던 토종 홍시 몇 개를 점심 대용으로 먹었다. 크기는 작고 맛은 꿀처럼 달지만 씨가 많다는 게 흠이라면 흠. 그러나 다음 세대에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이 귀한 물건을 어르신은 내 손이 무겁게 가득 들려주셨었다.

 

바깥 기온은 여전히 쌀쌀하다. 낮에는 투명한 햇살이 넘쳐흘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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