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침묵만이 가득합니다. 태풍 이후의 땅 위에서의 소란과 분주함이 인간의 차지라면 자연의 모든 변화에 무심한 것 역시 신의 영역인 듯합니다. 언젠가 나는 '희망이란 생명이 유한한 자의 조급함'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영생이 가능하다면 희망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겠지요. 굳이 시간에 구애받을 일도 아니고 말이지요. 그런 까닭에 영원이란 나태함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교육을 통한 계층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산업화의 초창기에 교육은 인생역전의 기회로 작용했던 게 사실입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였고, 제도가 미비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은 혼란기에는 기회도 많은 법이지요. 탈법적이기는 하지만 부동산 투기가 자신의 계급을 바꿀 수 있는 공공연한 방법이었다면 교육과 고시는 정상적인 계층 상승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계급이 공고화되고 계층 상승은 꿈도 꿀 수 없는 그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되는 바람에 일반인이 느끼는 박탈감은 날이 갈수록 커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각에서는 수시 전형의 문제를 거론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학생도 소위 SKY로 지칭되는 일류 대학의 수시 전형을 순전히 자력으로 통과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경험해 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결과를 낳았던 건 학생부의 불공정성도 한몫했었고, 학부모의 돈과 권력이 수험생의 능력을 과도하게 포장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수시 전형이 현대판 음서제로 불린 데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생 선발을 대학의 자율에 맡기면서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입시 전형이 탄생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많은 대학의 입시 전형을 속속들이 알 수도 없을뿐더러 각각의 대학은 학과마다 또 다른 입시 전형이 존재하니까 말이지요. 그렇게 분류하면 수천 가지의 입시 전형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닐 듯합니다. 부정한 편법이란 일반인들이 미처 다 알 수 없는 많은 방법 속에서 싹트게 마련이지요. 소위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은 수시 전형의 방법을 과도하게 늘림으로써 벌어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계층 사다리를 걷어찰 수 있었던 그들만의 방법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입시전형을 단일화하거나 몇 가지로 좁히자는 제안을 하면 어떨까요? 모르긴 몰라도 모든 대학이 손사래를 칠 겁니다. 대학의 자율을 해친다는 명목으로 말이지요.

 

조국 후보자의 자녀도 그와 같은 혜택을 입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비록 불법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학생부의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시 전형의 방법을 최소한으로 제한하지 못한다면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수정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대학에게 학생 선발의 권한을 무제한적으로 제공하는 한 교육을 통한 계층 사다리는 영원히 복구되지 않을 듯합니다. 하나의 학과에서도 리더십 전형이니 논술 전형이니 학생부 종합전형이니 특기자 전형이니 정시 전형이니 해서 합격하는 방법이 제각각인데 전국의 각 대학별, 학과별 입시 전형을 모두 취합한다면 한 권의 책으로 엮기도 힘들지 않을까요? 욕심이 과한 것에 대한 경고였는지 13호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교회의 첨탑이 여럿 부서졌더군요. 무심한 하늘 아래 오직 인간만 분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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