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공기도 맑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들이 이어질 때면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의 기후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게다가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봄과 가을은 어찌나 빨리 지나가던지 계절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저만치 밀려나곤 한다. 미처 작별 인사도 하기 전에 말이다.

 

일본 불매운동 열풍이 한 달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에 의해 내려진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일부 정치권에서 우려와 반대 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국민들 대다수는 오히려 반기는 모양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인해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던 무분별한 일본 제품 사용에 대한 반성과 자각의 계기가 되었다면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인해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나라의 현 위치를 파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아베에 대해 오히려 고마워해야 되지 않느냐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들려오곤 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자주적으로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외세에 의해 그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노력해온 게 사실이다. 미군부를 등에 업은 이승만 정권이 친일 청산은커녕 친일파와 손잡고 독립운동가를 배척하고 탄압했던 것도, 쿠데타에 의한 박정희 정권의 탄생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전두환 일당도 그 부정하고 잔악한 모습을 미국과 일본의 엄호 속에 숨겨왔던 게 사실이다. 떳떳하지 못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많은 국부를 낭비했을 것이며, 미국과 일본의 부당한 요구에 얼마나 여러 번 굴종적으로 머리를 조아렸겠는가.

 

아베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태도를 현 정부가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그와 같은 모습에 국민들 대다수가 열렬한  박수와 지지를 보내는 것이고 말이다. 아베는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만 독립국가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 대한민국 내에 일본을 지지하는 친일 엘리트들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언제까지고 자신들의 식민지로 남아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왔던 가까운 나라 대한민국이 지소미아의 종료와 함께 완전한 독립국가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아베의 뒤통수를 쳤으니 아베는 그게 불만이고 묵과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시금 깨닫는 요즘, 아베의 헛발질이 새삼 고마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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