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키우는 예쁜 누나 - 올려놓고 바라보면 무럭무럭 잘 크는 트렌디한 다육 생활
톤웬 존스 지음, 한성희 옮김 / 팩토리나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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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적어도 선인장에 얽힌 추억 한두 가지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당시로서는 신문물이나 진배없었던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전자파에 대한 우려가 갑자기 높아지던 시기였다. 인체에 대한 전자파의 유해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사람들은 일단 전자파로부터 자신을 지킬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하였고 별 해괴하고도 다양한 방법들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빠르게 전파되었다. 그렇게 떠돌던 방법 중 하나가 선인장이었다. 전자파를 방출한다고 알려진 컴퓨터나 텔레비전 옆에 단지 선인장 하나만 놓아두어도 인체에 유해하다는 전자파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간단하고 손쉬운 해결책이던가. 사람들은 너도 나도 전자파 차단용 선인장을 구입하기에 급급하였고, 남아도는 선인장은 친구 생일 선물로 누군가의 집들이 선물로 처리되었다.

 

그렇게 불티나게 팔려나가던 선인장이 어느 순간 소리 소문도 없이 뚝 끊긴 건 아마도 전자파 차단 효과에 대한 불신이 싹트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어느 집이건 집안의 각 방마다 선인장 한두 개씩을 반드시 놓아두던 다정했던 풍경이 삭막하고 살풍경한 모습으로 돌변했던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애지중지하던 선인장이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던 건 물론 선인장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영원히 사라진 듯했다. 선인장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진정한 생은 이 생에도, 그렇다고 이 생 이후에도 잇는 것이 아니라 이 생 밖에 있다'는 프루스트의 구절을 한탄처럼 내뱉지 않았을까.

 

"하얀 털이 누에고치처럼 보호막을 친 백운금선인장은 나이 든 노인처럼 보이지만, 전혀 약하지 않아요. 백운금의 성긴 털이 남아메리카 산맥의 무서리와 타는 듯한 태양빛으로부터 선인장을 지켜줬거든요." (p.61)

 

톤웬 존스의 책 <선인장 키우는 예쁜 누나>는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90년대 초 거금을 들여 처음 구입하였던 컴퓨터 옆에 인테리어 소품처럼 나란히 놓았던 선인장 화분에 얽힌 추억과 어느 방송사의 익숙한 TV 드라마 제목에 끌렸다는 게 이 책을 읽게 된 경위였다. 책의 저자인 톤웬 존스는 모로코의 마라케시에 있는 마조렐 정원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었단다.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몹시 사랑했던 그곳에서 커다란 선인장을 만나고 힘들고 지친 마음을 위로받은 뒤, 선인장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얼마나 사랑했던지 자신의 결혼식장을 선인장으로 꾸미고 다육식물로 만든 부케를 들었다고.

 

"책에는 그녀의 트렌디한 감각이 돋보이는 50가지 다육식물 일러스트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별난 특성을 지녔는지, 어떻게 가꾸고 스타일링하고, 플랜테리어로 활용하면 좋은지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곁에서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고 고민을 묵묵히 들어준 그들에게 멋진 엄마 아빠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이 책과 선인장 한 그루만 있으면 왠지 좋은 일이 찾아올 것만 같습니다." (p.134)

 

영국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저자는 십수 년간 선인장, 다육이 친구들과 동고동락하면서 그들을 잘 키우고 세련되게 스타일링하는 노하우와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습득했다고 한다. 사실 어떤 분야든 쉽게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만큼의 열정과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식물이든 동물이든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 주변에서도 마음만 앞섰다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그만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를테면 날로 심해지는 미세먼지를 잡기 위해 미세먼지에 좋다는 정화식물 화분을 집에 여러 개 들였다가 얼마 못 가서 시들시들 모두 말려 죽인 경험을 마치 자신의 무용담처럼 들려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반려동물 대신 반려 식물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활동력이 떨어지는 노인 가구는 물론 스트레스 감소, 심리적 안정, 공기정화 등에 탁월한 식물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젊은 층에게도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에도 언제나 사전 지식이 필요한 법, 책에는 식물을 고르는 일부터 화분 선택하기, 분갈이하기, 가지치기, 번식시키기까지 식물을 키울 때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긴다. 싹에서 윤기가 돌기로 소문난 '성미인'도 갖고 싶고, '설렘을 느껴요'라는 꽃말을 지닌 '우주목'도 갖고 싶고, 동전이 주렁주렁 달린 듯한 모양의 '중국돈나무'도 갖고 싶고... 낙엽이 지는 늦가을의 우울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대책이 필요한 듯한데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나 역시 식물을 키우기만 하면 죽여서 내보내는 식물 저승사자가 아니던가. <선인장 키우는 예쁜 누나>가 나를 유혹한다. '다육이 하나 키워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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